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로마서 1장 1절, 은혜로 다시 쓴 삶의 이름

장재형 목사의 로마서 1장 1절 설교를 따라,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자 사도로 소개한 바울의 고백을 묵상합니다. 자격과 공로가 아닌 은혜로 시작된 부르심이 오늘 우리의 정체성과 섬김, 복음을 전하는 삶의 방향을 어떻게 새롭게 하는지 살펴봅니다.

장재형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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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펼친 로마서의 한 문장이 인간의 공로로 높이 쌓은 신앙의 성벽에 틈을 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은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던 마음을 은혜 앞에 세운다. 장재형목사(미국 Olivet University 설립)의 설교는 그 변화의 문턱에서 로마서 1장 1절을 다시 읽게 한다. 바울의 첫인사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누구에게 속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대답이 들어 있다.


편지의 행간에서 복음의 심장이 뛴다


로마서를 펼칠 때 먼저 어려운 교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죄와 의, 율법과 구원을 설명하는 논증의 무게에 눌려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주저한다. 그러나 이 설교가 권하는 출발점은 신학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 신학을 전하는 사람의 심장에 가까이 가는 일이다. 로마서는 무엇보다 바울이 로마의 교우들에게 자신의 믿음과 간절함을 담아 보낸 편지다.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며 로마를 바라보았고, 그 너머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먼저 이방 교회들이 모은 연보를 예루살렘에 전달해야 했으며, 그 길에는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들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교는 이 상황을 짚으며 로마서에 유언과 같은 절박함이 배어 있다고 읽는다. 자신이 그들에게 가지 못하더라도, 복음만큼은 그들의 삶에 온전히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디오가 받아 적은 문장에는 논증뿐 아니라 탄식과 찬양, 은혜에 압도된 감격이 함께 흐른다. 장재형 목사가 로마서를 지식의 축적에 가두지 말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음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과 그 복음에 자신의 삶을 맡긴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편지의 행간을 따라가는 성경 묵상은 바울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가 붙든 은혜 앞에 독자 자신을 세운다.


그렇다고 편지의 뜨거움을 느끼는 일이 교리의 무게를 덜어 내는 일은 아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도행전에 기록된 증언의 발걸음은 로마서에서 그 의미를 깊이 드러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것에서 그 일이 죄인인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바울의 감격과 신학적 논증은 서로 경쟁하지 않으며, 하나의 구원 소식을 함께 밝힌다.


가장 낮은 이름에 은혜의 소명이 깃든다


로마서 1장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업적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이름을 내놓는다. 여기서 종이라는 말은 겸손을 꾸미는 수사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밝히는 고백이다. 생사까지 주인에게 달린 종의 처지에 자신을 놓으며, 바울은 더 이상 자기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복음 앞에서 달라진 것은 그가 쌓아 온 업적의 크기가 아니라,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 고백의 뒤에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건이 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다메섹으로 향하던 바울의 자기 확신은 무너졌고, 그는 보지 못하는 시간을 지나 회개하며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아나니아에게는 두려운 박해자로 보이던 사람을 주님은 택한 그릇이라고 부르셨다. 이 장면을 채우는 것은 인간의 자격을 확인한 뒤에야 다가오는 보상이 아니라, 원수였던 사람까지 품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라는 말에는 우월함보다 놀라움이 먼저 담긴다. 바울은 스스로 준비를 마치고 사도직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자격 없던 자리에서 불러 주신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가장 낮은 종이라는 고백과 복음을 맡은 사도라는 소명이 한 문장 안에서 만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은혜는 자신을 증명하던 사람을, 주님께 속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 이중의 정체성은 겸손과 담대함이 서로를 지켜 주는 자리가 된다. 주님 앞에서 낮아진다는 것은 세상의 죄와 불의 앞에서도 무조건 고개를 숙인다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보냄받은 권위를 말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할 수도 없다. 종의 마음을 잃지 않는 담대함, 맡겨진 사명을 피하지 않는 겸손이 바울의 첫인사 안에 함께 놓여 있다.


믿음은 자기 의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자란다


장재형 목사의 해설은 바울의 자기소개를 로마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의와 연결한다. 로마서 1장 17절이 밝히는 믿음의 길은 인간이 행위로 자기 의를 완성하는 길과 다르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은혜가 그의 공로에서 비롯되지 않았듯,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김받는 일도 자신의 성취를 내세워 얻는 보상이 아니다. 이 신학적 통찰은 우리가 믿음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종교적 열심이 깊어져도 자기 자랑이 함께 자랄 수 있다. 바울에게도 지식과 열정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그리스도의 길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회개는 잘못한 행동을 돌아보는 일과 더불어,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 기대어 살던 태도를 내려놓는 데까지 나아간다. 은혜를 의지한다는 것은 자기를 괜찮은 사람으로 증명할 근거를 더 모으는 대신,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을 삶의 바닥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렇다고 복음이 삶의 책임을 지워 주는 것은 아니다.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율법주의도, 자유를 핑계로 죄에 머무는 방종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길에서 벗어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죄와 죽음에 대한 승전보이며, 그 소식을 받은 사람은 다시 죄에 자신을 내어 주는 대신 거룩과 사랑을 살아 내도록 부름받는다. 순종은 은혜를 대신하는 자격 증명이 아니라, 은혜로 달라진 삶이 향하는 방향이다.


이 은혜는 바울 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예외적인 선물이 아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에게 구원의 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 편지가 한 사람의 회심 이야기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 준다. 서로 다른 배경과 전통을 지닌 이들이 한 공동체를 이룰 때, 각자의 자랑을 최종 기준으로 삼아서는 갈등을 넘어설 수 없다. 누구도 자기 공로로 의로움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 앞에서, 타인을 평가하던 마음도 자신이 의지하는 은혜를 돌아보게 된다.


로마서의 가르침이 형제 사랑과 원수를 축복하는 태도,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체 생활로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믿음은 머릿속에서 옳은 답을 확인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사랑을 위해 절제하고, 상대의 신앙을 세우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자리에서 복음은 구체적인 모습을 얻는다. 은혜의 깊이는 높아진 자기 평가보다 낮아진 섬김의 자리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맡겨진 복음은 사랑의 낮은 길을 간다


바울의 첫인사는 자신을 설명하는 데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라는 말과 함께 시선은 부름받은 사람에게서 그를 부르신 분과 맡겨진 소식으로 옮겨 간다. 복음은 바울이 만들어 낸 사상도,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소유할 수 있는 자산도 아니다. 그는 복음의 주인이 아니라 그것을 맡아 전하는 사람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구분이 오늘 교회에도 분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복음을 특정 지도자의 권위에 묶거나 공동체의 성과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을 때, 전달자가 정작 전해야 할 분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직분은 사람을 통제할 명분이 아니라, 보낸 분의 뜻을 종의 자세로 섬길 책임이다.


복음이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것을 전하는 자리에서도 자신을 낮춘다.


이 길에서 낮아짐은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한 우회로가 될 수 없다. 설교가 말하는 자기부인은 복음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태도다. 맡겨진 능력과 권위가 나를 높이는 데 쓰이는지, 다른 사람의 믿음을 세우는 데 쓰이는지에 따라 같은 섬김의 자리도 달라진다. 부르심의 목적이 하나님의 복음에 있다면, 그 일을 마친 뒤 남아야 할 것도 전달자의 이름보다 전해진 기쁜 소식이다.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말 역시 세상을 피해 자신만 보존하라는 뜻으로 닫히지 않는다. 죄와 세상의 가치로부터 구별된 사람은 오히려 그 세상 속으로 보냄받아 거룩과 사랑을 드러낸다. 가정과 직장, 학교와 지역사회는 소명을 위한 별도의 무대를 기다리는 장소가 아니라, 이미 맡겨진 삶으로 응답해야 할 자리다. 그곳에서 필요한 것은 자신을 크게 보이게 하는 언어보다, 작은 종의 마음으로 감당하는 책임이다.


바울은 자신의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면서도 로마의 교우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복음을 맡은 사람이 연약함을 숨긴 채 홀로 서야 하는 것은 아니며, 공동체는 서로의 필요를 돌보고 기도로 함께 길을 걷는다. 이 편지를 덮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에도 바울의 첫인사는 조용히 우리 곁에 남는다. 오늘 내가 지키려는 이름은 나의 공로로 높아진 이름인가, 아니면 은혜로 불러 주신 분께 속하여 누군가를 섬기는 종의 이름인가.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장재형목사 공식 홈페이지: www.davidjang.org




작성 2026.09.14 19:07 수정 2026.09.1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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