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사이를 걷는 사람들, 26년 9월호

<문학 칼럼니스트 이성빈 작가>



좋은 책과 좋은 문장을 읽으면, 그 뒤에 숨은 작가의 얼굴이 궁금해집니다. 그 문장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그날의 마음과 풍경은 어땠는지. 

〈 문장 사이를 걷는 사람들〉은 반년마다 한 번, 소설가·시인·인문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작품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솔직한 뒷이야기부터, 글을 쓰게 만드는 삶의 순간들까지. 우리는 문장과 문장 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그 속에 깃든 숨결과 온도를 발견하려 합니다. 이 여정은 한 편의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 남을 대화가 될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작가 이성빈입니다.

다시 한번 이 소중한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 안부를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벅차오르면서도, 어쩐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떠는 기분입니다. 참 무해한 기분이네요. 다들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저의 소설 《소리 내 우는 법을 잊은 나에게》가 세상에 나온 지도 벌써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제는 최신작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시간이 되어버렸네요. 그간 저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올해 4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군대라는 통제된 공간. 다들 한 번쯤 다녀오시거나 주변에서 익히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참 많은 제약이 따르는 곳이죠.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째서인지 사회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바쁘게 지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할 기회처럼 느껴졌거든요. 기왕 이렇게 된 거, 그것들을 놓칠 수 없다는 욕심이 발동해 지난 2년 반을 아주 지독한 욕심쟁이로 살았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책들을 차근차근 읽어나갔고, 영어 공부도 쉬지 않았으며, 보고 싶었던 영화와 애니메이션까지 틈틈이 챙겨 봤습니다. 나름 쉰답시고 푹 쉬면서도 쉬지 않고 자기계발을 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휴식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 보면 한 번 하고 나면 훌훌 털어지는 일이 있는가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 끝나지 않는 일들도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무언가에 꽂혀서 기어코 끝장을 보려 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신가요?

 

늦은 밤 무심코 튼 드라마 한 편에 빠져 기어이 해 뜨는 걸 보고야 말았다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취미인데 어느새 온갖 장비를 사 모으다가 텅 빈 지갑과 마주했던 그런 순간들 말입니다. 혹은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이 너무 좋아서, 그 작가의 절판된 예전 작품들까지 헌책방을 뒤져가며 싹싹 긁어모아 본 적은 없으신가요?

 

그런 집착 덕분에 뭔가에 진심으로 몰두하는 순간도 경험합니다. 아마 다들 그런 열정적인 마음을 하나쯤은 품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고개를 끄덕이고 계신다면, 이어질 제 이야기에 조금 더 너그럽게 공감해 주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유난을 떨다 보니 어느덧 저는 순식간에 스물네 살이 되었습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조심스레 다독여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론이 길었네요. 각설하고,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제가 책을 읽으면서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스마트폰으로 찍어두거나 다이어리에 끄적여보신 적 있으실 텐데요. 책장을 천천히 넘기다가, 어느 순간 시선이 한 문장에서 멈추며 “오?” 하게 되는 문장. 또는 남들은 스쳐 지나갈지 모를 평범한 행간 속에서, 오직 나만의 레이더에 포착되어 반짝이는 순간. 저는 그걸 ‘발견적인 문장’이라고 부릅니다.

 

그 문장들은 대개 거창하거나 교훈적인 격언도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짚어내거나, 내가 명확히 표현하지 못했던 모호한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는 문장이죠. “맞아, 이런 거였어!”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그런 문장이요.

 

저는 책을 읽으며 그런 발견적인 문장들을 찾게 되는 순간을 참 좋아합니다. 시선이 멈춘 자리에 밑줄을 긋고, 책 위로 삐죽 튀어나오도록 인덱스 스티커를 조심스레 붙입니다. 그리고 그 문장을 필사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수집된 문장들은 제 안으로 걸어 들어와 생각의 살점이 되고 가끔은 글을 쓸 때 뼈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학창시절에도, 복무를 하던 시절에도, 그리고 사회로 돌아와 새로운 글을 매만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저를 지탱해 준 것은 ‘발견적인 문장’들이었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어떤 발견을 기다리는 설레는 산책과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오늘에는 어떤 문장이 걸어 들어와 멈추어 섰나요?

 

저는 곧 신간 출간을 앞두고 있는데요, 이번에도 문학을 애정하는 마음 하나로 진심을 꾸역꾸역 눌러 담아 새로운 작품을 써 내려갔습니다.

 

2년 반이 넘는 공백을 지나 다시 문장 앞에 선 저의 걸음이, 여러분의 책장 위에서도 작지만 반짝이는 발견의 순간으로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작성 2026.09.08 09:01 수정 2026.09.0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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