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역사박물관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문집 『삼봉선생집』권1이 지난달 27일 보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삼봉선생집』은 조선 초기에 발간된 희귀한 문집으로서, 정도전 연구의 중요 자료로 평가된다. 정도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이자 문신이며,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개국공신이다. 정도전은 새 수도 한양의 설계와 건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교 이념에 따라 종묘와 사직을 경복궁 좌우에 배치하고, 도성 내 주요 도로의 위치를 정하였으며, 내사산(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을 잇는 한양도성의 기초를 세웠다. 경복궁과 도성 사대문의 이름을 지은 것도 정도전이었다.
1398년(태조 7), 정도전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권력 투쟁인 왕자의 난으로 인해 이방원에게 목숨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공신에서 역적이 된 정도전은 무덤조차 남기지 못했고, 생전에 발간된 그의 문집도 사라져 버렸다. 잊혔던 정도전의 유고는 약 70년 뒤 다시 빛을 보게 된다. 1465년(세조 11) 정도전의 증손자인 정문형(鄭文炯)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하며 정도전의 글을 수습해 문집으로 다시 펴낸 것이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삼봉선생집』이 당시에 편찬된 책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삼봉선생집』에는 정도전이 쓴 150여 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나주 유배 시절에 지은 시와 명나라에 사행으로 갈 때 지은 시, 가장 가까웠던 벗 정몽주에게 보낸 시 등 정도전의 삶을 보여주는 여러 시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새 수도 한양의 아름다움과 활기찬 모습을 노래한 〈신도팔경시(新都八景詩)〉이다.
신도팔경시(새로운 도성의 여덟 가지 풍경을 읊은 시)
1 기전산하(한양을 둘러싼 자연)
비옥하고 풍요롭네, 한양 두른 천리의 땅.
안팎의 산과 강은 요새 같이 험준하다.
어진 정치, 천혜 환경, 아울러 갖췄으니,
이 나라 천년동안 길이 이어지리라.
2 도성궁원(도성과 궁궐 정원)
천 길 높이 솟아오른 한양성은 철옹같고,
오색구름 두른 궁궐, 봉래궁을 보는 듯해.
봄마다 궁원에는 꽃 피고 꾀고리 우니,
해마다 한양 사람 노닐며 즐겁구나.
3 열서성공(별들처럼 늘어선 관아)
우뚝 솟은 여러 관아, 서로 향해 마주 서니,
북극성 에워싼 뭇별과 다름없네.
달 뜬 새벽 육조거리 물처럼 고요하고,
고관대작 행차에도 먼지 하나 일지 않네.
4 제방기포(바둑판 같은 성안의 마을)
구름에 닿을 듯이 높이 솟은 기와집과,
도성 안 곳곳마다 이어진 초가집들.
아침 저녁 집집마다 밥짓는 연기 이니,
새로운 이 시대 번화하고 태평하네.
5 동문교장(동대문의 훈련장)
종과 북 크게 울려 대지를 뒤흔들고,
군대 깃발 나부끼며 하늘에 이어졌네.
천군만마 훈련 모습 일사불란 정연하니,
이대로 말을 몰아 전장에 나가겠네.
6 서강조박(서강으로 들어오는 조운선들)
사방의 온갖 배들 서강으로 몰려드니,
큰 배에 만 섬 곡식 가득 싣고 온다네.
수천 창고 넘쳐나는 묵은 쌀을 보시겠소.
정치는 백성들의 배부름에 있는 것을.
7 남도행인(남쪽 나루의 나그네들)
남쪽 나루 한강물은 도도히 흐르는데,
사방의 나그네는 무수히 몰려드네.
늙은이 쉬어가고, 젊은이 등짐 지고,
앞뒤로 노래하며 서로 주고 받는구나.
8 북교목마(북쪽 교외에서 말을 기름)
북쪽 들판 바라보니 숫돌처럼 평탄하고,
봄이 오니 무성한 풀, 샘물도 달큰하네.
만 마리 말 운집하여 저마다 뛰노는데,
목동도 마음 따라 서쪽으로 남쪽으로.
이 시에는 험준한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한양의 형세와 궁궐의 모습, 광화문 앞 육조거리 관아와 도성 안 민가의 풍경, 동대문 훈련장의 군사 조련, 서강 나루터로 들어오는 수많은 조운선까지 한양의 웅장하고 활기찬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신도팔경시>는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새로운 수도 한양의 역동적인 첫인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삼봉선생집』에는 정도전의 시와 더불어 당대 최고 문장가들의 글이 함께 실려있다. 정도전의 스승 목은 이색(李穡)이 써준 발문과, 문장으로 명나라까지 이름난 권근(權近)이 지은 서문이 있으며, 중간본을 간행하면서 새롭게 수록한 신숙주(申叔舟)의 서문도 있다.
최지희 서울역사박물관 유물관리과장은 “새 수도 한양 건설을 지휘한 정도전의 문집이 서울의 역사를 보전하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600년 세월이 지나 보물이 된 『삼봉선생집』을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번에 『삼봉선생집』 권1을 더하여 기존의 『용비어천가』, 『대동여지도』 등과 함께 총 27건의 보물을 소장하게 됐다. 지정문화유산의 자세한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https://museum.seoul.go.kr/) 내 서울역사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