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용 칼럼] 보험설계사의 명함첩, 다시 걸 수 있는 대표가 없는 진짜 이유
명함첩을 넘겨 보면 한 장 한 장 기억나는 얼굴이 있다. 모임에서, 세미나에서, 소개 자리에서 받은 법인 대표들의 명함이다. 그런데 그중 지금 편하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명함은 쌓이는데 다시 연락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기업고객 발굴을 시작한 보험설계사라면 적잖이 겪는 고민이다.
불편한 이야기부터 꺼내야겠다. 다시 연락할 이유가 없는 것은 명함 관리를 못 해서가 아니다. 설계사가 대표에게 건넬 수 있는 것이 보험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대표에게 보험은 늘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필요하지 않은 시기에 걸려 오는 설계사의 안부 전화는, 아무리 정중해도 '언젠가 팔기 위한 연락'으로 들린다. 그래서 설계사는 전화를 망설이고, 명함첩은 점점 무거워진다.
대표가 1년 내내 붙들고 있는 고민은 따로 있다. 세금, 인사와 노무, 자금, 거래처, 채용, 가업 승계 같은 경영의 문제다. 이런 문제 앞에서 대표는 늘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다. 세무사를 바꾸고 싶어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모르고, 노무 문제가 생겨도 당장 연락할 전문가가 마땅치 않은 경우가 있다.
여기에 설계사가 놓치고 있는 역할이 있다. 모든 답을 직접 줄 필요는 없다. 대표의 고민을 듣고, 그 고민을 풀 수 있는 전문가와 이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무사, 노무사, 법무사 같은 전문가와 신뢰 관계를 맺어 두면, 대표에게 다시 연락할 이유가 생긴다. "대표님, 지난번 말씀하신 노무 문제와 관련해 이야기 나눠 볼 만한 분이 있습니다"라는 연락은 판매 전화로 들리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설계사가 많다. 학벌도 화려한 경력도 없는 내가 무슨 전문가를 연결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연결자의 가치는 스펙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표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태도, 약속을 지키는 성실함, 그리고 누군가를 소개할 때 내 이익보다 상대의 필요를 먼저 따지는 기준에서 나온다. 오히려 현장을 돌며 여러 업종의 대표를 만나는 설계사야말로 연결에 유리한 자리에 서 있다.
다만 연결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첫째, 대표의 동의 없이 회사 정보나 연락처를 다른 전문가에게 넘기지 않는다. 둘째, 세무·노무·법률 판단은 해당 전문가의 영역이다. 설계사가 대신 답하거나 결과를 약속해서는 안 된다. 셋째, 소개를 대가로 금품을 주고받는 구조는 관련 법규에 저촉될 수 있다. 협업 방식은 미리 규정을 확인하고 투명하게 정해야 한다. 이 선을 지킬 때 연결은 신뢰가 되고, 넘을 때는 오히려 의심을 산다.
자신의 연결 역량을 다음 질문으로 점검해 보길 권한다. 명함첩의 대표 다섯 명에게 보험 말고 건넬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가. 대표가 세무나 노무 문제를 꺼냈을 때 믿고 소개할 전문가가 한 명이라도 있는가. 그 전문가와 서로의 일하는 방식을 알 만큼 대화를 나눠 봤는가. 소개한 뒤 양쪽 모두에게 결과를 물어본 적이 있는가. 소개의 기준이 내 실적이 아니라 대표의 필요인가.
어떤 전문가와 먼저 관계를 맺어야 할지는 주로 만나는 대표의 업종과 규모에 따라 다르다. 제조업 대표와 서비스업 대표의 고민이 다르고, 직원 수에 따라 필요한 전문가도 달라진다. 출발점은 자신이 가장 자주 만나는 대표의 고민에서 찾는 것이 좋다.
명함첩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명함이 많아서가 아니라, 건넬 것이 하나뿐이어서다. 보험 하나를 들고 가던 사람에서 대표의 고민을 이어 주는 사람으로 역할을 넓히는 방법을, 같은 고민을 가진 설계사들과 함께 점검해 보고 싶다면 아래 정보공유방을 활용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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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용 │ 1인기업연합신문 대표 / 비즈니스 커넥터
보험설계사와 기업 대상 영업인이 소개와 지인에 기대지 않고 법인 대표와 신뢰 기반의 접점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칼럼과 인터뷰, 전문가 협업을 통해 기업과 전문가의 만남을 설계하며, 상담사가 기업고객을 더 전문적이고 투명하게 만나도록 돕고 있다.
영업 현장에서 기업고객과의 첫 접점을 고민하는 보험설계사와 영업인에게 실질적인 판단 기준을 나누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