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선악(善惡)을 넘어서

고석근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압락삭스(Abraxas)이다. 

 

- 헤세의 <데미안>에서 

 

조말선 시인은 그녀의 시 <매우 가벼운 담론>에서 ‘질문과 대답’에 대해 노래한다. 

 

‘한 쌍의 질문을 새장 속에 가둔다. 시금치를 먹고 크는 질문 한 쌍. 멸치를 먹고 크는 질문 한 쌍. (…) 질문들은 스스로 대답을 낳는다. 새장 속에 한 개의 둥근 대답이 있다.’ 

 

새가 새장 속을 빠져나오지 않는 한, 질문이 대답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새는 한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의 질문을 해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단 한 번도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어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30대 중반에 나의 새장을 박차고 나와 창공을 마구 날아다닌 것. 세상의 눈으로 보면, 완전한 방탕이었다.

 

어머니께서 

 

“그 애가 그런 아이가 아닌데….”

 

하고 우셨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광활한 창공이 너무나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수시로 밤새워 술을 마셨다. 정신은 더없이 맑아졌다.

 

새벽 전철을 타고 올 때, 공기는 너무나 상쾌했다. 이런 나를 누가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 가장으로 보았겠는가?  

 

나는 그때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한 치열한 투쟁 중이었다. 알은 너무나 견고했다.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이루어진 요새. 

 

우리는 새장 속의 새처럼 선과 악을 생각한다. 그것은 진정한 선과 악이 아니다. 새장 속을 나와 창공을 날아봐야 한다. 창공에서 봐야 선과 악의 진면목이 보인다.

 

평생을 제도권의 완벽한 도덕과 규율 안에서 ‘착한 인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던 이들이, 어느 날 걷잡을 수 없는 괴물 같은 악에 빠져 파멸하는 뉴스를 종종 본다. 

 

자신의 새장을 단 한 번도 벗어난 적 없었기에, 억압된 어둠이 기형적인 방식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알을 깨지 못한 자의 비극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6.09.10 10:29 수정 2026.09.10 10:49

RSS피드 기사제공처 : 코스미안뉴스 / 등록기자: 한별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