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근현대사 비극 담아낼 연작 기획… 국제영화제 출품 계획 세계와 소통
- 성백 작가 “15년 동반자 이재웅 감독과 함께한 진혼의 여정… 평화의 메시지 전할 것”
제주4·3 희생자 약 2만 5천 명에서 3만 명. 당시 제주 인구 30만 명 중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비극의 땅, 제주의 풀 한 포기와 흙 한 줌에는 그날의 피와 살이 여전히 녹아 숨 쉬고 있다. 억울하게 사라져 간 넋들의 피 위에 서서 역사의 비극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이를 평화의 서사로 승화시키는 전위예술가 성백의 퍼포먼스 실험 영상 작품 ‘Messenger_제주의 눈물’이 제주의 주요 역사·자연 공간에서 펼쳐졌다.

이번 작품은 부산문화재단의 ‘2026 올해의 포커스 온(Focus On) 작가’로 선정되며 국내외 현대미술계에서 장르와 국경을 넘나드는 행보를 이어가는 성백 작가의 대표 연작 ‘Messenger’ 시리즈의 연장선이다. 성백 작가는 2019년 ARTsBUS를 타고 부산을 출발해 유라시아 대륙을 지나며, 유럽 곳곳에 남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적 흔적과 총탄 자국 등을 작가만의 독창적인 '탁본' 작업으로 기록해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성백 작가는 제주4·3평화공원을 비롯해 동문시장, 안덕계곡, 삼양해수욕장 등 역사의 상흔과 오늘날의 삶이 교차하는 현장을 직접 찾았다. 식물과 인체라는 가장 원초적인 재료를 매개로, 제주의 검붉은 토양과 차가운 묘비에 스민 시간의 무게를 신체적 언어로 어루만졌다.

특히 퍼포먼스 도중 제주의 토양에 내린 풀뿌리를 끌어올려 그 끝에 엉겨 붙은 흙을 직접 씹어 삼키는 강렬한 행위는 압권이다. 이는 단순한 자학이 아닌, 이 땅에 스며든 희생자들의 피와 살, 미처 다하지 못한 숨결을 자신의 몸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거룩한 ‘체화(體化)’의 과정이다. 역사적 비극의 상흔을 신체 내부로 끌어안아 죽어간 넋들의 통증을 공유하고, 그 고통을 자신의 생명력으로 다독여 승화시키려는 원초적이고 절박한 위령(慰靈)의 몸짓이다.
이번 작품에는 스페인 출신의 아티스트이자 부토 무용가, 신경생물학 박사인 루시아 솜브라스(Lucía Sombras / 본명: Lucía Callén Herrero)가 협연자로 출연하여 경계를 허무는 깊은 신체적 교감을 이끌어냈다. 원시의 숲과 깊은 골짜기 속 침묵의 교류 끝에 성백 작가가 건넨 ‘옷 한 자락’과 ‘작고 푸른 생명’을 물려받은 그녀는, 제주의 넋을 품은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도시의 거리와 자연을 누비는 평화의 날갯짓을 보여준다. 스페인 이방인의 시선과 제주의 역사적 기억이 결합되어 국경과 세대를 넘어서는 진혼의 메시지를 완성한 셈이다.

특히 이번 영상 기록은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백 작가의 뒤를 밟으며 그의 예술적 삶과 치열한 창작 현장을 묵묵히 기록해 온 이재웅 영상 감독이 맡아 예술적 완숙도를 높였다. 작가의 철학과 전위적 행보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이재웅 감독은 예측 불가능한 퍼포먼스 현장의 에너지를 단일 채널 고화질 영상과 입체적인 사운드로 정밀하게 포착해 내며, 압도적인 시각적 몰입감을 만들어 냈다.
이재웅 감독은 “제주의 눈물을 기억하며 기록되지 않은 순간도 존재하는지 되묻게 된다”며,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존재했다는 것은 결국 기록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예술의 역할이 단순한 아픔의 환기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 속 손짓과 몸짓은 과거의 상흔을 어루만져 치유와 정화로 이어지게 하는 매개체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 치유의 순간에 작게나마 힘을 보태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소명이이자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길이라 말한다.
성백 작가는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제주의 대지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넋들의 아픔이 잠들어 있다”며, “15년 넘게 나의 예술적 궤적을 함께 기록해 준 이재웅 감독, 그리고 국경을 넘어 제주의 슬픔에 깊이 공감해 준 루시아 작가와 함께한 이번 작업을 통해 비극을 넘어서는 유유하고 멈추지 않는 평화의 기운이 자연과 우리 삶 속에 되살아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성백 작가는 이번 제주4·3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향후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퍼포먼스 영상으로 꾸준히 담아낼 예정이다.
나아가 완성도 높은 영상 작품들을 국내외 주요 실험영화제 및 국제영화제에 출품하여, 한국 역사의 상흔을 예술적으로 기록하고 위로하는 깊이 있는 작품 세계와 작가로서의 철학을 전 세계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