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린미술] 윤혜은 대표 |
“선생님! 저 그리고 싶은 게 있어요!”
아이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손에 들고 있던 수업안을 내려놓는다. 아이의 머릿속에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주말에 다녀온 캠핑, 새로 함께 살게 된 도마뱀, 처음 가 본 고양이카페…
아이들과 함께 작업한 지도 벌써 20년의 시간이 되어간다. 아이들을 처음 만나면 내가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있다.
“혹시 그리고 싶었던 것 있어?”
그리고 싶은 게 가득한 아이가 있는 반면, “아무거나요….”라고 대답하는 아이도 많다. 최근에는 아무거나라고 답하는 아이들이 많아져 씁쓸하기도 하다. 그럴 땐 내가 아이의 호기심을,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아 끌어내 본다.
“그리고 싶었는데 잘 안 되던 것, 그거 선생님하고 같이 해볼까?”
“요즘 좋아하는 캐릭터 있어? 게임이나 웹툰 주인공도 좋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딱히 없는 친구들에게는 주제를 슬쩍 던져본다.
“선생님이 어제 미술관에 갔었는데 어제 하늘에 보라색, 핑크색, 주황색이 다 있더라? 오늘은 더우니까 시원~한 거 그려볼까??”
미술 수업을 하다 보면 같은 주제를 제시해도 아이들은 참 다르게 바라본다. 누군가는 색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누군가는 선과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떤 아이는 꼼꼼하게 계획한 뒤 천천히 완성해 가는 반면, 또 다른 아이는 손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며 우연한 결과를 즐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 재료와 방법을 제시하기보다, 아이의 성향과 표현 방식에 맞는 재료와 기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하늘’이라는 한 가지 주제 앞에서도 한 아이는 물감으로 하늘의 색을 가득 채우고, 다른 아이는 아빠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바라본 하늘을 이야기한다. 또 어떤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만날 수 있는 무지개, 비행기, 독수리 등의 개체를 먼저 표현하고, 어떤 아이는 점토를 이용해 기억 속 장면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낸다.
![]() ▲ [기린미술] 아이들 작품 |
주제는 같지만 결과는 모두 다르다.
나는 그 다름이야말로 미술교육에서 매우 소중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미술은 단순히 ‘잘 그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꺼내어 세상과 나누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어른의 눈에는 조금 엉뚱해 보이는 표현도 아이에게는 가장 솔직하고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에게 하나의 정답을 알려주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리고 도와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수업을 준비할 때도 ‘무엇을 가르칠까?’만큼이나 ‘이 아이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때 가장 편안할까?’를 생각한다. 어떤 재료가 이 아이의 호기심을 깨워줄지, 어떤 기법이 아이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한다.
그리고 아이가 완성한 작품 앞에서 종종 깨닫는다. 내가 준비한 것은 하나의 주제였지만, 아이들이 보여준 것은 수많은 세상이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른 것을 발견한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같은 재료를 건네주어도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미술교육은 ‘똑같이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선생님! 저 그리고 싶은 게 있어요!”
오늘도 아이의 이 한마디를 반갑게 듣는다. 그리고 어떤 것을 그리고 싶은지, 어떤 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을지 기다려본다.
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다르기에 아름답다. 그 다채로운 시선을 지켜주고 펼쳐주는 것, 그것이 내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미술교육의 가장 중요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