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아랑가] 들국화 여인

1994, 작사 정은이/작곡 남국인/가수 현철

들국화가 피어나는 절기다. 하절염천(夏節炎天)의 끝자락에 매달린 매미노래 흥겨운 추흥가절(秋興佳節), 나보다 나를 더 생각하시고 있을 그 사람~ 들국화 여인을 생각하면서, 하늘 여행을 떠나고 노래만 남은, 현철 선생의 <들국화 여인>을 펼친다. 

 

현철 선생을 떠올리면 토종 강된장 같은 구수한 맛이 당긴다. 컬컬한 목소리, 이웃집 아저씨처럼 투박하고 퉁망스러운 경상도 사투리, 걸걸하게 묻어나는 입담, 민요풍이 가미된 독특한 꺾기 창법 등은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다.

 

여기에 그의 무명가수 생활 20년이 더해진다. 곰삭은 인생의 맛이 베인 것이다. 대기만성, 나이 40대 중반에 쨍하고 빛을 본 그는, 부인의 내조가 없었다면, 오늘의 성공은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현철의 <들국화 여인>은 누구일까.

 

<들국화 여인> 가사

 

사랑이 병이 나면 무슨 약이 있나요 / 그것은 하나 오직 당신의 그 정이라야 합니다 / 세월이 흘러가면 잊혀진다 하지만 / 그것은 내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 말 / 아아 오늘 밤도 오늘 밤도 눈물짓는 들국화 여인 // 가슴에 타는 불꽃은 무엇으로 끄나요 / 그것은 하나 오직 당신의 그 정이라야 합니다 / 찬바람 불어오는 외진 길가 모퉁이 / 오늘도 서러웁게 떨고 있는 들국화 / 아~ 어느 누가 어느 누가 감싸주랴 들국화 여인.(가사 전문)

 

현철은 49세에 들국화 여인을 발견했다. 그의 부인 송애경이다. 이들 부부는 한 번도 부부싸움을 안 했단다. 그들은 신혼 초부터 10여 년 동안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생활이었다.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갔을 법도 한데, 잔소리조차 안 한 부인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맘을 가지고 살았다.

 

그의 본명은 강상수, 1945년 김해에서 출생하여 대저중학교와 동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부친은 종묘씨앗가게를 운영했으며, 모친은 5일장에서 좌판을 깔고 씨앗을 팔았다. 현철은 결혼할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물 한 그릇 달랑 떠놓고 식을 올렸다고 했다.

 

그는 동아대를 다니다가 가수가 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와서 밤무대를 전전하던 중, 1969년 23세에 태현철이라는 이름으로 <무정한 그대>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당시 가요계에서는 신인가수 남진, 나훈아가 한창 주목을 받고 있어서 데뷔와 동시에 무명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 후 10년의 세월을 절치부심한다. 

 

그러던 중 1982년 현철과 벌떼들이라는 이름으로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발표하여, 히트한다. 이 곡이 그의 인생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 후 한국 아랑가(트로트))계 하나의 봉우리로 우뚝 섰다.

 

이어진 노래 <들국화 여인>은, 1994년 히트곡이다. 이후 <사랑의 이름표>, <봉선화 연정>, <사랑은 나비인가 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불러 국민가수로 사랑받으며, ‘오빠~’ 소리를 듣다가, 이후 동아대학교를 44년 만에 명예졸업을 하고, 2024년 7월 영원의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들국화 여인> 노래 속의 들국화는, 국화과의 야생종으로 산국(山菊)·구절초(九節草)·감국(甘菊)·울릉국화(鬱陵菊花)·쑥부쟁이로 부르며, 꽃말은 ‘그리움과 기다림’이다.

 

이 꽃은 하얀색과 보라색이 있는데, 보라색은 해국(海菊)이라고 한다. 이것은 들국화의 전설에서 유래된 것인데, 옛날 임금님이 금강산을 순시할 때, ‘시들은 국화꽃 잎에 동해의 용왕이 이슬을 품어 주어 시들지 않게 한 전설’에서 붙인 이름이다. 중국 북송 때 주방언(周邦彦, 1056~1121)은 이라는 시인이 살았다. 청진거사(淸眞居士)라고도 불렸다. 중국 전당 지방 출신, 신종(1048~1085. 북송의 6대 황제) 때 변도부(汴都賦)를 써 올리고 태학정을 역임하고, 66세로 사망하였다. 그는 자신의 부인을 남겨두고 먼 길을 나서면서, ‘접련화(蝶戀花)’ 라는 시를 지었다. ‘나비를 그리워하는 꽃’이란 말이다.

 

‘달이 밝아 깬 까마귀는 잠 못 들고 / 물시계의 물은 다 떨어져 갈 때 / 우물물 긷는 소리 도르륵 도르륵 들렸네 / 불러 깨우자 두 눈동자 초롱초롱 빛나고 / 눈물 꽃이 떨어져 베갯속 솜이 차가웠네 // 손잡으니 서리 바람이 귀밑을 날리는데 / 떠나가는 아쉬움이 서성댔나니 / 작별 인사 슬퍼서 들어내기 어려웠네 / 누각 위에 비스듬히 북두칠성 기울 제 / 이슬 속에 멀어져 가니 여기 저기 닭이 우네.’

 

이른 새벽에 먼 길을 나서는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떠남을 아쉬워 한 심경을 또록 또록 엮었다. 집을 나서서 한참을 가다가 조금 전의 이별 장면을 마음속으로 토로한 시다. 하늘에 계신 현철 선생에게 이 시, ‘접련화 사연’을 전해 주고 싶다.

 

<들국화 여인> 노래는, 현철 선생의 대표 히트곡이며, 현철 선생은 ‘한국 트로트계의 4대 거장’중의 한 분이시다.(세칭 4대천왕은,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 한국 대중가요 전통 노래(리듬, 창법 등)의 장르 명칭, ‘트로트’라는 단어는 언제쯤 ‘아랑가(ArangGA)’로 변경 혹은 개명하여 통용할 수 있을까?

 

‘트로트’라는 단어는, 1914년 미국의 가수가 부른 노래, ‘Fox Trot(여우가 빠르게 달리다)’가 기원 단어이다. 이것일 일본으로 천이되어, ‘엔카(演歌)와 융합되어, 도로또’로 불렸다. 이 단어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과 한과 DNA와는 상관이 없는 돌연변이 용어이다. 이 단어가, 식민지시절(1910.8.29.~1945.8.15.)을 거치면서 대한해협을 건너와서, 1960년대 ‘뽕짝’으로 불리던 우리 전통가요(리듬, 창법) 명칭의 대용 단어로 통용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주창(主唱)하는 ‘아랑가(ArangGA)’는, 아리랑의 ‘아랑’과 가요의 ‘가’를 합친 단어. ‘아랑가(ArangGA)’는, 대한민국 지식재산처(특허청)에 ‘특허상표로 등록’된 고유한 상표명칭이다.(제40~2426336. 상표특허권자, 유차영)

 

2019년 코로나-19 펜데믹 환경 속에서 일어난 아랑가(트로트) 열풍은, 2026년 가을까지 펼럭거리고 있다. 그 시절 경연대회에서 입상을 한 어느 가수는, 이후 이 바람결을 타고, 5년 연속으로 280주 동안을 1위 자리를 독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히 경하드릴 경사(慶事)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계의 통습과 대중들 감흥의 내재성과 포괄성과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다른 각도의 시각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펜덤과 내 가수의 풍토를 위풍(爲風)하는 듯한’ 상업성과 기획 연출성의 의도적 편협과 반복성, 통용하는 단어(트로트)의 비전통성에 대한 우려의 시각... 

 

‘트로트’라는 용어의 돌연변이적 도입과 비전통성, 임시변통적(뽕짝이라는 단어가 비속하다는 견해에 대하여)으로 통용된 단어의 매너리즘적인 관념화, 사회적 통용과 통념의 틀을 이용한 비고유적 언어, 단어, 용어의 반복 기획적인 상업화, 문화체육관광부 등 제도권과 언론과 대중문화예술계 커뮤니티(협회, 등)의 문제 인식과 전통과 정통을 근저(根底)한 개선의지의 결여와 간과가 다른 시각의 핵심이다.

 

들국화가 피는 절기, 현철 선생의 <들국화 여인> 노래가, ‘아랑가(ArangGA)’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고, 현철 선생이 ‘아랑가(ArangGA)’ 가수의 천왕(天王)으로 기억되기를 기원드린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6.08.22 09:57 수정 2026.08.2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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