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맛있는 개똥철학] 지구 최고의 빌런은 인간

전명희

빌런(Villain)은 악당이다. 영화에서는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을 해치며,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를 빌런이라 부른다. 그런데 지구의 역사를 놓고 보면, 가장 강력한 빌런은 따로 있다. 바로 인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는 존재가 지구를 가장 많이 파괴하고 있다. 자연은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선악을 만드는 건 인간이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악당이 되기도 하고 영웅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능을 가진 생명체다. 불을 다루고, 언어를 만들고, 문명을 세우고, 우주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인간은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진 만큼 가장 큰 파괴력도 갖게 되었다. 어떤 동물도 강을 막지 않았고, 숲을 통째로 베어내지 않았으며, 바다를 플라스틱으로 채우지 않았다. 어떤 생명체도 기후를 바꿀 만큼 자연을 훼손하지 않았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지구의 질서를 흔들었다.

 

사자는 배가 부르면 사냥을 멈춘다. 나무는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양분을 빨아들인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필요'만큼 취한다. 그러나 인간만은 '욕망'만큼 빼앗는다. 필요한 것을 넘어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버리는 삶을 성공이라 불렀다. 지구를 병들게 한 것은 문명이 아니라, 절제를 잃어버린 욕망이다. 더 큰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죄를 모른다는 데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불렀지만, 다른 생명에게는 가장 두려운 포식자가 되었다. 숲이 사라질 때 가장 먼저 둥지를 잃는 것은 새들이고, 바다가 오염될 때 가장 먼저 침묵하는 것은 물고기들이다. 코끼리는 상아 때문에 죽고, 코뿔소는 뿔 때문에 사라지며, 벌은 농약과 기후변화로 서식지를 잃어간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곤충과 식물, 미생물들이 매일 지구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왕이 아니라, 생명의 공존을 책임져야 할 관리인이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고 있다.

 

모든 생명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벌 한 마리가 사라지면 꽃이 줄고, 꽃이 줄면 열매가 줄며, 열매가 줄면 결국 인간의 식탁도 비어진다. 작은 개구리 한 마리, 이름 없는 풀 한 포기조차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인간은 다른 생명의 멸종을 구경하는 관객이 아니다. 그 멸종의 끝에는 결국 인간 자신의 생존이 기다리고 있다. 다른 생명의 마지막은 곧 인간 문명의 마지막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인간을 절망의 존재로만 볼 필요는 없다. 인간은 지구 최고의 빌런이면서 동시에 유일하게 자신의 잘못을 성찰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나무를 심을 줄 알고, 멸종 위기의 생명을 보호할 줄 알며,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는 존재도 인간뿐이다. 칼을 만든 손으로 생명을 살리는 손길을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한 세대를 잠시 살아가는 임차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보야, 지금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양심이야.”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6.08.21 10:36 수정 2026.08.2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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