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13일, 정부는 주택공급 대책을 발표하면서 용산공원 부지에 주택을 짓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이튿날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어린이정원은 좁은 개념"이라며 "용산공원 전체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한복판, 반환 미군기지 약 300만㎡ 위에 조성될 예정이던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공원 그 심장부에 아파트를 세우겠다는 선언이다.
2007년 제정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은 지난 20년 가까이 단 하나의 원칙을 지켜왔다. 이 땅은 공원 이외의 용도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권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에도 훼손되지 않았던 이 원칙이 단 한 번의 부동산 대책으로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주택 공급과 공원 보존의 양립"을 말하지만, 공원 부지에 아파트를 짓는 순간 그것은 이미 양립이 아니라 잠식이다.
나는 조경계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이 계획에 분명히 반대한다. 이것은 단순한 직역 이기주의가 아니다. 도시가 무엇으로 지속되는지, 국가의 품격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다. 그리고 이 글은 동시에, 이 사태 앞에서 침묵하고 있는 조경학회와 관련 단체들을 향한 물음이기도 하다.
센트럴파크의 역설 - 비워둔 땅이 도시를 살찌운다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는 843에이커, 약 341만㎡다. 공교롭게도 용산공원 예정 부지(약 300만㎡)와 거의 같은 규모다. 1850년대 뉴욕에서도 오늘의 용산과 똑같은 논쟁이 있었다. 맨해튼의 금싸라기 땅을 왜 비워두느냐, 택지로 팔면 시 재정에 얼마인데… 그러나 뉴욕은 개발 대신 비움을 선택했고, 조경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와 캘버트 보의 설계로 공원을 만들었다.
170년이 지난 지금 그 결정의 성적표는 명확하다. 센트럴파크는 연간 4,200만 명이 찾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도시공원이 되었고 공원에 인접한 주택은 그렇지 않은 주택보다 중간가격 기준 약 25%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센트럴파크는 단 한 평도 분양하지 않았지만 맨해튼 전체의 부동산 가치와 도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짓지 않은 땅이 도시를 가장 부유하게 만들었다는 역설 바로 이것이 도시계획사가 남긴 가장 유명한 교훈이다.
물론 센트럴파크에도 그늘은 있다. 공원 조성 과정에서 세네카 빌리지라는 흑인 자유민 마을이 강제 이주당한 아픈 역사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교훈조차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만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도 도시는 공원을 만들었고 후대는 공원을 만든 결정이 아니라 그 과정의 폭력성을 반성한다. 공원 자체를 후회하는 뉴요커는 없다.
용산은 어떤가. 우리는 이주도, 수용도, 매입도 필요 없는 땅을 이미 손에 쥐고 있다. 120년간 외국 군대가 주둔했던 땅을 돌려받아 시민에게 돌려주기로 국민적 합의를 이룬 상태다. 센트럴파크가 치른 비용조차 치를 필요가 없는, 역사상 가장 값싸게 얻은 대형 도시공원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도시들은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베를린 템펠호프 - 시민이 투표로 지킨 비움
용산과 가장 닮은 사례는 베를린의 템펠호프 공원이다. 옛 템펠호프 공항이 폐쇄된 뒤 베를린시는 부지 가장자리에 주택을 짓는 개발안을 추진했다. 베를린 역시 심각한 주택난을 겪던 도시였다. 베를린시의 개발안은 부지 가장자리에 주택 약 4,700가구와 상업시설, 대형 공공도서관을 짓는 계획이었다. 전체의 약 20%만 개발하고 중앙 벌판은 녹지로 남기겠다는, 오늘의 용산과 판박이인 '양립론'이었다. 그러나 2014년 5월 주민투표에서 베를린 시민의 64.3%는 이 개발안을 부결시키고, 약 300헥타르로 여의도보다 넓고 공교롭게도 용산공원 예정 부지와 거의 같은 규모의 활주로 벌판을 통째로 공원으로 남기는 쪽을 택했다. 주택난의 도시가 주택 대신 공원을 선택한 것이다.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한 번 지어진 건물은 되돌릴 수 없지만 비워둔 땅은 언제나 미래의 선택지로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 투표에는 후일담이 있다. 그 뒤로도 베를린에서는 주택난이 심해질 때마다 '가장자리만 조금 짓자'는 시도가 되살아나고 있다. 일부 개발이라는 예외를 한 번 허용하면 예외는 반드시 다시 돌아와 원칙을 잠식한다.
뉴욕 하이라인과 파리 프롬나드 플랑테 - 버려진 철길도 공원이 된다
세계의 도시들은 공원을 줄이기는커녕 공원이 아니던 땅마저 공원으로 바꾸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파리는 폐선된 고가 철로를 세계 최초의 선형 공중정원 프롬나드 플랑테로 만들었고, 뉴욕은 철거 직전의 폐고가철도를 하이라인 공원으로 재생시켜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명소이자 주변 지역 재생의 기폭제로 만들었다. 서울의 경의선숲길이 '연트럴파크'로 불리며 일대 상권과 주거 선호도를 끌어올린 것도 같은 원리다. 도시는 녹지를 만들기 위해 철길과 고가도로까지 뒤지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확보된 공원 부지에 아파트를 넣겠다고 한다.
도쿄와 싱가포르 - 개발조차 녹지를 품는다
개발과 녹지의 양립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도쿄 롯폰기 미드타운은 방위청 이전 부지를 개발하면서 부지의 상당 부분을 녹지와 공원으로 남겨 고밀 개발과 공공 녹지를 한 필지 안에서 공존시켰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순서다. 그것은 '개발 부지에 녹지를 끼워 넣은 것'이지, '공원 부지에 건물을 끼워 넣은 것'이 아니다. 싱가포르는 아예 '가든 시티'를 국가 전략으로 삼아 국토 전체의 녹지율을 끌어올려 왔고, 그것이 오늘날 글로벌 기업과 인재를 끌어들이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런던의 하이드파크, 리젠트파크에 주택을 짓자고 말한 정부는 지난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없었다.
왜 300만㎡가 통째로 필요한가 - 생태축과 설계의 논리
용산공원의 가치는 면적의 크기가 아니라 위치와 온전함에 있다.
서울 지도를 펴 보면 북한산에서 남산을 거쳐 한강으로 내려오는 남북 녹지축이 보인다. 이 축은 도시의 바람길이자 야생동물의 이동 통로이고, 열섬을 식히는 찬 공기의 회랑이다. 그런데 남산과 한강 사이, 축의 마지막 연결 고리가 120년간 끊겨 있었다. 그 자리가 바로 용산이다. 용산공원 조성은 큰 공원 하나를 새로 얻는 사업이 아니라, 백 년 넘게 단절됐던 서울의 생태축을 다시 잇는 사업이다.
생태학에서 서식지의 가치는 면적에 비례하지 않는다. 같은 300만㎡이라도 통째로 있을 때와 열 조각으로 나뉜 때의 생태적 기능은 전혀 다르다. 가장자리가 아니라 안정된 내부 공간이 확보돼야 숲의 미기후가 만들어지고 생물이 깃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30만㎡의 아파트 단지는 전체의 10%가 아니다. 수만 명의 정주 인구와 차량 동선, 야간 조명과 소음이 공원 한복판에 들어서는 순간 그 주변은 공원이 아니라 단지의 완충지대가 되고 이어지려던 축은 다시 끊긴다. 10%의 잠식이 아니라 축의 절단이다.
설계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2012년 국제설계공모에서 당선된 West 8과 이로재의 'Healing: The Future Park'는 훼손된 지형과 물길을 복원해 남산의 능선이 한강까지 흘러내리게 하는 것을 계획의 뼈대로 삼았다. 부지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설계한 안이다. 그 한가운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도면 일부를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계획의 전제가 무너진다. 국제공모와 종합기본계획, 그 위에 쌓인 수백 편의 연구가 딛고 선 땅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공급 호수는 숫자로 세지만, 끊어진 생태축과 무너진 마스터플랜은 어떤 대책으로도 되살리지 못한다.
경제 논리도 성립하지 않는다
공급 효과는 한 줌이다
정부 구상대로 어린이정원 부지 약 30만㎡에 용적률 300%를 적용하면 5~6천 가구, 500%까지 올려도 1만호 남짓이라는 것이 업계 추산이다. 서울의 연간 주택 수요와 멸실 물량을 생각하면 시장의 방향을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이번 대책에서 그린벨트 해제로만 7만 가구 이상을 계획한 것과 비교해도 용산공원 몫은 상징성에 비해 실효가 초라하다. 반면 잃는 것은 영구적이다. 5천 가구를 얻기 위해 300만㎡ 국가공원의 원형과 20년의 사회적 합의를 허무는 교환이며 그 어떤 대차대조표로도 남는 장사가 아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더 걱정스럽다. 용산 한복판의 아파트는 필연적으로 '로또 청약'이 되고 주변 집값을 자극하는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집값을 잡겠다는 수단이 집값을 끌어올리는 역설은 우리가 지난 20년간 수없이 목격해온 장면이다.
집값의 해법은 다른 곳에 있다
서울 집값의 구조적 원인은 공원이 많아서가 아니다. 정비사업 지연으로 인한 도심 공급 부족, 풍부한 유동성, 특정 지역 쏠림이 본질이다. 해법도 거기에 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와 신속한 인허가, 역세권 고밀 복합개발, 도심 유휴 국공유지 활용 등이 더 효율적이다. 용산 일대만 해도 국제업무지구 등 개발 가능한 산재 부지가 있다. 굳이 공원 본체를 헐어야 할 도시계획적 필연은 어디에도 없다.
공원은 비용이 아니라 자산이다
1인당 GNI 3만 달러대, 명목 GDP 세계 10위권의 나라에서 시민이 누리는 녹지의 양은 어떤가. 전국 1인당 도시공원 조성 면적은 2024년 기준 12.8㎡로 2000년(5.0㎡)보다 늘었지만, 정작 서울 시민이 체감하는 생활권 공원 면적은 4.6㎡ 수준이라는 분석이 있다. 신도시인 고양 일산(10.8㎡)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소득은 선진국인데 녹지는 아니다. 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카드가 용산공원이다.
공원의 경제적 가치는 이미 계량화된 상식이다. 도시 열섬 완화와 냉방 에너지 절감, 미세먼지 저감, 시민 건강 증진에 따른 의료비 절감, 관광 수입, 그리고 주변 부동산 가치 상승 등과 같이 센트럴파크의 25% 프리미엄과 서울숲·경의선숲길 일대의 가치 상승이 증명하는 '공원 프리미엄'이다. 공원은 소비되는 비용이 아니라 복리로 불어나는 자산이며 그 수익자는 특정 단지의 입주자가 아니라 도시 전체다.

지을 수 있는 땅인가 - 법과 토양이 말하는 것
백번 양보해 경제성이 있다 해도 이 땅은 지금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아니다.
첫째, 법이 막고 있다.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은 부지의 공원 외 용도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주택 건설에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20년간 유지된 입법 취지를 부동산 경기 대응용으로 뒤집는 것은 법적 안정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며 국가가 국민과 맺은 약속의 무게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둘째, 토양이 오염돼 있다. 반환 부지 곳곳에서 기준치를 크게 웃도는 석유계총탄화수소(TPH)와 벤젠 등 오염물질이 확인돼 왔다. 캠프킴 부지는 정화 작업이 5년째 진행 중이고, 유엔사 부지는 정화 완료 판정 후에도 2018년 공사 중 오염토가 다시 발견된 전례가 있다. 2022년 정부 스스로 '공원 이용은 무방하나 한 곳에서 350일 이상 거주할 경우 위해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공원은 머무는 곳이지만 아파트는 사는 곳, 365일의 정주 공간이다. 어린이가 뛰놀아도 되는 수준의 정화와 그 위에서 수만 명이 평생을 살아도 되는 수준의 정화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며 후자의 비용과 시간은 아직 누구도 책임 있게 계산하지 않았다.
셋째, 도시 인프라의 문제다. 용산 일대는 이미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예정돼 있어 공원 부지 주택까지 더해지면 교통 과부하는 불 보듯 뻔하다. 서울시의 도시계획 권한과의 충돌, 공원 조성 계획 전면 재수립에 따른 시간 손실까지 감안하면 '빠른 공급'이라는 명분조차 성립하기 어렵다.
비워두는 것이 국가의 실력이다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방향이 틀렸다. 주택은 재개발·재건축의 물꼬를 트고, 역세권을 고밀화하고, 도심 유휴 부지를 활용해 지어야 한다. 공원은 헐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지켜서 얻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성숙한 도시가 그 순서를 지켰고, 그 순서를 지킨 도시만이 오늘날 살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1850년대의 뉴욕은 가난했지만 센트럴파크를 남겼고, 주택난에 시달리던 베를린 시민은 투표로 템펠호프를 지켰다. 2026년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아파트 5천 채가 아니라 100년 뒤를 내다보고 땅을 비워둘 줄 아는 안목이다. 채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비워두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실력이다.
100년 뒤의 서울 시민은 2026년의 이 결정을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기억할 우리가 ‘공원을 지킨 세대’로 남길 바란다.
[ 정종일_본지 전문고문위원, 해찬솔(주) 대표이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