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이상옥의 『디카시와 철학』은 이론을 완성하지 못했다

신기용

본 비평은 『디카시와 철학』을 실험적 기록이나 창작론이 아닌, 스스로 이론적 정식화를 자임한 텍스트로 읽는다. 개념의 개방성이나 생성 과정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이론이라는 형식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구분·논증·검증 가능성을 충족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개념을 안정화하기보다 대상의 전제를 흔들고 검증 가능성을 여는 비판적 사유를 의미한다.

 

이상옥의 『디카시와 철학』(2025)은 디카시를 철학적으로 정식화하려는 의욕적인 시도처럼 보인다. 이상옥은 『디카시와 철학』을 “디카시와 철학의 접점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적 사유와 인공지능의 응답이 서로를 비추며 이뤄진 공동 사유의 기록”(4쪽)이라 규정한다.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통해 이론이 확장·종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자기 규정은 방법론적 실험을 예고한다. 동시에 이론서로서 요구되는 개념 정합성과 논증 책임을 선제적으로 유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공동 사유는 AI의 한계로 인해 특정 개념 분석에서는 일방적 보조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이상옥이 ChatGPT를 “단순한 도구를 넘어 새로운 관점을 던지는 대화자”(4쪽)로 설정한 순간, 인공지능 언어 생성의 구조적 한계와 인식론적 지위는 분석 대상에서 탈락한다. 그 결과 ‘공동 사유’는 엄밀한 방법론이 아닌 이후 드러나는 이론적 불완결성을 정당화하는 서사적 장치로 작동한다.

 

『디카시와 철학』의 가장 큰 문제는 디카시 핵심 개념의 불안정성이다. 이상옥은 “ChatGPT가 오해하고 있는 가장 우스러운 것이 디카시의 핵심 개념인 ‘시적 충동’, ‘시적 감흥’, ‘시적 형상’, ‘날시’라는 용어들이었다”(4쪽)고 말한다. 이 진술은 AI의 오류를 지적하기보다, 디카시 이론 자체가 아직 개념적으로 정식화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고백에 가깝다.

 

실제로 이상옥이 제시하는 날시의 정의인 시인이 “시적 충동이나 시적 감흥을 느끼게 하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5쪽)은 다시 ‘시적 충동’, ‘시적 감흥’, ‘시적 형상’이라는 미정의 개념에 의존한다. 이는 개념 간 관계를 설명하는 정의가 아닌 개념을 자기 자신으로 되돌리는 순환 구조이다. 개방성과 유동성을 이유로 들더라도, 이론화를 시도하는 순간, 순환 정의는 치명적 결함으로 작동한다.

 

이와 맞물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정의를 해석하는 대목은 디카시 이론의 또 다른 한계를 드러낸다. 이상옥은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이라고 표기된 것은 ‘디지털카메라로 날시를 찍어라’는 뜻”(5쪽)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의의 설명이 아닌 이상옥의 이론을 사전 정의에 사후적으로 투사한 해석이다. ‘시적 형상’을 곧바로 ‘날시’로 동일시하는 순간, 앞서 구분을 시도했던 개념 체계는 다시 붕괴한다. 동시에 디카시는 언어·이미지·의미 생성의 복합적 작용이 아닌, 촬영 행위 중심의 기술적 절차로 환원한다. 

 

또한,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 이전 단계의 잠정적 어휘 정보에 불과하다. 그러함에도 이상옥은 임시 정의를 디카시 이론의 근거처럼 호출하고, 다시 자신의 개념으로 환원한다.

 

이에 대해 디카시 옹호자는 디카시가 본래 열린 예술 개념이며, 개념의 유동성은 결함이 아닌 특성이라고 반론할 수 있다. 『디카시와 철학』은 단순한 창작 선언문이 아니다. 이상옥은 이 책을 “철학의 시대성과 유파를 고려하여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구성”(9쪽)했다고 밝힌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하이데거·라캉 등 주요 철학 개념을 체계적으로 호출한다. 이는 디카시를 이론적으로 정식화하려는 시도임을 스스로 천명한 것이다. 이론화를 시도하는 순간, 개념의 최소한의 구분과 위계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철학 차용 방식 역시 문제적이다. 이상옥은 플라톤의 이데아론,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 하이데거의 존재론, 라캉의 실재 개념 등을 디카시와 연결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디카시 이론의 내적 요구에서 도출하였다기보다 사후적 병치에 머문다. 이상옥이 “디카시는 어느 한 철학으로 환원되지 않고 오히려 그 다채로움을 고스란히 품는다”(8쪽)고 말할 때, 이는 포용의 선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론적 검증 가능성을 차단하는 문장이다. 어느 철학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는 말은, 동시에 어느 철학적 기준으로도 엄밀히 검토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복수의 철학을 병치하는 방식이 디카시의 확장성을 보여 준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문제는 병치 그 자체가 아닌 병치 이후의 이론적 작동 방식이다.『디카시와 철학』에서 철학 개념들은 디카시를 흔들거나 문제화하지 않는다. 모두 디카시를 긍정하는 방향으로만 호출한다. 이는 확장이 아닌 비판적 긴장의 상실이다. 철학이 디카시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철학이 아닌 수사에 불과하다.

 

『디카시와 철학』은 디카시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려는 문제의식과 실천적 열정은 분명히 보여 주지만, 그 결과는 완성된 이론이 아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확장성’, ‘다층성’, ‘다채로움’이라는 언어는 이론의 풍요를 증명하기보다, 개념 정식화 이전 단계의 미결 상태를 가린다. 『디카시와 철학』의 의의는 디카시 이론을 완성했다는 데 있지 않다. 디카시 이론이 여전히 개념 분화와 논증 정식화, 철학적 검증을 요구하는 미완의 과제임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 있다.『디카시와 철학』은 결론이 아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의 목록이다.

 

결국, 『디카시와 철학』은 아직 논증과 개념 정식화가 필요한 단계에 있다.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6.08.19 09:48 수정 2026.08.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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