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필 칼럼] 약자는 이길 대상이 아니라 보호할 대상이다

예의는 위를 볼 때가 아니라 아래를 볼 때 드러난다

회의실에서 이런 사람이 있다. 상사가 말할 땐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후배가 말하면 중간에 말을 자른다.

 

식당에서도 본다. 직원에게 반말을 하던 사람이 옆 테이블에 아는 임원이 앉은 걸 보면 목소리가 달라진다.

 

병원에서도 봤다. 접수대 직원에게 언성을 높이던 사람이 진료실 문이 열리면 다른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같은 사람이 몇 분 사이에 그런다.

 

집에서는 나도 그렇다. 밖에서 하루 종일 삼킨 말이 현관을 넘자마자 제일 만만한 사람 앞에서 터진 날이 있다. 아이였다.

 

앞의 셋은 대개 계산이다. 마지막 하나는 계산도 아니다. 반격당하지 않을 자리에서는 감정이 쉽게 새어 나온다. 그래서 더 무섭다. 계산은 들키면 부끄럽기라도 하다. 새어 나오는 건 알고도 반복된다.

 

강약약강. 나보다 위인 사람 앞에서는 주눅이 들거나 공손해지고, 아래라고 여겨지는 사람 앞에서는 말과 어깨에 힘부터 들어간다.

 

왜 비겁한가. 반격당할 수 있는 상대에게만 예의를 차리기 때문이다. 그 예의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위를 볼 때가 아니라 아래를 볼 때 드러난다. 위에만 있고 아래에는 없다면, 그 예의는 사람을 향한 게 아니라 힘을 향한 것이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다면,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해져라."

 

2006년 제니 후블러와 대니얼 브래스의 연구는, 상사의 적대적 대우를 경험한 직원이 집에서는 가족을 향해 부정적인 평가와 정서를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직장에서 되돌려주기 어려운 분노가 더 안전한 관계로 옮겨가는, 이른바 ‘전위된 공격’의 모습이다.

 

오해 하나는 걷어내야겠다. 언젠가 내가 그 자리에 설 수 있으니 잘해두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도 계산이다. 나에게 끝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사람에게도 똑같이 대할 수 있느냐. 그게 시험이다.

 

그 시험을 나는 집에서 자주 치른다. 야단은 좀처럼 치지 않으려 한다. 늘 성공하지는 못한다. 다만 이건 아니다 싶은 몇 가지가 있고, 그중 하나가 강약약강이다.

 

첫째 딸이 네 살 어린 동생을 때리거나 때리려고 할 때는 엄하게 다스린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다음에 듣는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먼저 손을 대는 건 안 된다고 말한다. 네 몸이 소중하듯 남의 몸도 소중하다고. 남의 몸에 함부로 손대는 건 어떤 경우에도 안 된다고.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풀라고.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상대는 없다. 약한 사람은 이길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고 배려할 대상이다.

물론 안다. 그렇게 가르치는 나 역시 힘의 우위에 서 있다. 아이가 무서워서 그만둔다면 아이가 배운 건 약자를 지키는 법이 아니다. 아빠가 자기보다 세다는 사실이다.

 

힘의 차이를 알면서도 그 차이를 쓰지 않기로 하는 것. 사람은 그걸 할 수 있다. 그 선택지를 쓰지 않으면 사람이 사람일 이유가 하나 줄어든다.

오늘 하루 당신의 말투는 몇 번 바뀌었는가. 그리고 그 말투는 누구 앞에서 가장 부드러웠는가.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작가, 칼럼니스트, 

강연가,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 <할퀴고 물려도 나는 수의사니까>

<나는 매일 두 번 출근합니다>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방구석에서 혼자 읽는 직업 토크쇼>(공저)

<당신의 원고는 왜 계약되지 않는가>

독저팅, 필레터 운영

부산시청 공무원 200여 명 특강, 

부산시교육청영재교육진흥원 교원 직무연수 외 다수 출강

공식사이트 https://tothemoonpark-cpu.github.io/pilacademy/

이메일 : tothemoon_park@naver.com

 

작성 2026.08.18 10:38 수정 2026.08.1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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