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가 남긴 마지막 ‘유언장’
그 뜨거운 숨결을 받아 적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인간의 탐욕과 위선으로 신음하는 지구를 바라보면서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악화된 환경과 인간의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의 마지막 유언장’은 자연과 인간의 균열 사이에 침몰된 생명의 기록이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마지막 통지서다. 지구가 신음하는 소리는 곧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처이자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의 눈물 같은 것이다. 홍영수 시인은 사라져가는 것들의 마지막 떨림을 시로 포착하여 따뜻한 손길로 담담하게 적고 있다. 우리가 외면한 상처 위에서, 지구는 오늘도 조용히 죽음을 준비한다. 지구는 더 이상 경고하지 않는다. 경고의 시간을 지나, 이제 ‘유언장’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홍영수 시인은 이 시집에 ‘지구의 유언장’, ‘해인海印의 항해’, ‘헤테로토피아로서의 DMZ’, ‘수직의 삶’, ‘어찌할까나’, ‘통로가 되고 싶은’ 등 세상을 향해 의미 있는 시제를 내놓았다. 문장의 행간마다 뜨거운 진실을 끌어올려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시인의 진실에 대한 사유는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 문명의 감각을 되돌려주며 따뜻하고 비폭력적인 희망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고 있다. 지구의 신음이 시인의 시어로 힘찬 목소리가 되어서 들리는 순간, 우리는 이 세계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시인은 마지막 남은 시작의 가능성을 향해 세상을 향해 외친다. 우리가 병든 지구의 세포였다면 이 시집은 그 사실의 자각이다.
박테리아들이 뿜어낸 탄소의 입김과
임계점에 다다른 온실가스의 배출에
점점 숨통이 조여지며 질식사 직전이다.
남북극에서 줄줄 흐르는 천만년의 눈물을 보니
몇십억 년 내 삶의 유효기간도 머지않은 듯하고
갈수록 심한 균들의 난동질에 돌연변이가 되어가니
사망선고의 날짜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지구의 유언장’ 중에서
서울 한복판, 저 부릅뜬 두 눈은
탐욕의 부피를 부러워하지 말고
허상의 명예를 의심하라 하면서
비록 기울어진 운동장일지언정
우금치의 말발굽 소리로 일깨우란다.
함성의 바람이 분다
황토현 갑오의 바람으로 분다
주절주절 내리는 을미의 봄비에
사라지면서도 피어난 녹두 꽃잎
하늘하늘 길 위에 휘날린다
-‘종로에 핀 녹두꽃’ 중에서
자세를 낮추니
작고 낮은 것들이 눈망울에 맺히고
크고 높은 것들이 눈 밖에 매달린다.
차별을 지우니 편견이 없고
다름을 건너니 시비가 없다.
내 안의 울타리를 밀치고
마음의 문을 여니
내 안에 네가 들어오고
네 안에 내가 들어간다.
-‘낮추니’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