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대표적인 정형시는 하이쿠와 단가가 있다. 이 모두 와카(和歌)라는 일본의 노래(시)라는 일본의 가장 대표적, 전통적인 정형 시가인데 이 시가에서 유래한다. 와카(和歌)는 만요슈(萬葉集)에서 처음 쓰였는데 거기서는 화답(和答)하는 노래라는 뜻으로 썼다고 전한다. 근세에는 하이쿠 등과 더불어 시가(詩歌)의 한 장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처음 와카(和歌)는 단가(短歌)⋅죠카(長歌)⋅세도카(旋頭歌) 등 여러 가체(歌體)를 총칭하는 말이었으나 일반적으로 단가로 지칭하게 되었다.
와카(和歌)는 주로 5⋅7⋅5⋅7⋅7의 5구절 31음의 형식, 31글자로 정착되어 종합된 내용과 리듬을 표현할 수 있어서 일본인의 감각에 호소하기 쉬운 시형(詩形)으로 존속됐다. 주로 상류층 귀족들의 전유물로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으며, 앞의 5⋅7⋅5구절과 뒤의 7⋅7을 두 사람이 읊는 것으로 처음에는 귀족 사회에서 발생한 렌가(連歌)라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렌가는 점차 중세에 이르러 무사들과 승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얻어 번창했다.
렌가의 시초는 단렌가(短連歌)인데, 5·7·5·7·7의 운율을 두 사람이 나누어 화답으로 이어 나가는 언어 유희적인 요소가 강한 시가였다. 12세기 후반 헤이안 시대 말기에 이르러서 렌가는 차츰 길어져 죠렌가로 발전해 갔다. 죠렌가는 한편의 와카를 즉흥적으로 합작하는 경합의 묘미를 즐기는 데서 출발한 단렌가(短連歌)와는 달리 구를 연이어 읊어가며 전체적인 묘미와 조화를 중시하는 장르로 발전했다.
렌가는 근세에 들어와 비속한 언어를 자유로이 사용하는 등 기발한 소재로 해학을 복잡한 규칙이 없이 표출하는 하이카이 렌가(俳諧連歌))로 독립하게 된다. 에도시대(1603∼1867)에 이르러서 하이카이 렌가는 그 규모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조직화되었으며, 이 당시 하이카이 렌가의 거장, 마쓰오 바쇼(松尾芭蕉,1644∼1694) 활약해 었는데, 이 시대에는 하이카이로 불렸고, 메이지 시대, 1904년 이후로는 렌쿠(連歌)라는 말로 정착되었다.
하이카이는 홋쿠(렌가나 하이카이에서 제1구를 가리키는 말. 5, 7, 5의 17음으로 구성)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규칙이 없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서민들 사이에 파급되어 대중성을 확보하게 된다. 관조의 태도에 투철한 한적미를 주장한 마쓰오 바쇼에 이르러 하이카이는 또 하나의 문학세계로 개화했다. 그러다가 1886년 나오부미의 와카개량운동이 일어나면서 와카에서 단가로 명칭이 변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메이지 유신 이후 신문학사조 유입과 함께 근대문학으로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단가로 명칭이 바뀌게 된 것이다. 오치아이 나오부미는 일본의 현대 단가 발전 과정을 제1 낭만파 시대, 제2기 자연파 시대, 제3기 사생파 시대로 구분했다.
이 무렵 일제강점기 때인데, 일본으로 유학을 하러 간 최남선은 일본의 문학 흐름을 적용하여 시조부흥운동의 주체자로 월간 종합문예지 『소년』을 중심으로 선구 문화의 도입, 외국 작품의 번역 소개, 신문체의 개척, 언문일치의 문장을 시도해 우리 문단에 많은 영향을 불러일으켰다. 가투라는 일본의 가루타 놀이인 카드로 음차를 빌어와 시조놀이를 가투라고 해서 시조 부흥논의로 자극되어 출현했는데. 이는 시조 부흥을 위한 시조의 계통과 보급이라는 목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시조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식민지 상황에서 문학을 통한 민족의식의 구현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시조 부흥 운동이었다.
이 당시 육당 최남선은 모든 민족이 국민문학의 전통을 수립하고, 우리의 민족 문학의 전형을 확립해야 할 것은 바로 시조라고 역설하고, 계몽적 국민문학의 전형으로 시조 장르 부흥 운동을 일으킨 까닭을 그의 「새해에 어린 동무에게」라는 아래의 시에서 알 수 있다.
“느셔라 부르셔라/그지업시 자라셔라//하고먼 큰못숨이/뿌리뿌리 버드실제,//북한번 다시돗는날/서울이라합니다.//또한층 올라섯네/더욱멀리 내다뵈네,//우리의 참목숨이/어대만치 잇삽든지,//맨압헤 다시그압히/겐줄알고 갑세라.//
-최남선의 「새해에 어린 동무에게」전문
단가와 장가로 구분되며, 단가는 글자 수가 5, 7, 5, 7, 7, 총 31자로 이루어지고, 이를 기본으로 되풀이되는 횟수에 제한이 없이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할 때까지 반복하는 형식이 장가다. 우리나라의 시조와 비교하면 평시조가 단가에 해당하고, 연시조가 장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와카(和歌)에서 유래된 단가와 하이쿠는 행마다 5, 7, 5음으로 모두 17음으로 반드시 계절을 나타내는 키고(季語)와 구의 매듭을 짓는 기레지로 이루어진다. 하이쿠는 근세에 발전한 하이카이렌가, 줄여서 하이카이에서 태어난 근대 시가 양식이다. 두 사람이 주고 받으며 부르는 렌가의 첫 구를 따로 떼어낸 것으로 대체로 5·7·5의 열일곱 자로 메기면 7·7의 열네 자로 받으면서 계속 이어지는 긴 시가(詩歌)의 첫 구 5·7·5만을 떼어내 하나의 시가 양식으로 장착한 장르인데 촌철살인이 들어있다.
하이쿠와 글자 수가 일치하는 등 유사한 정형시 장르로 센류가 있다. 하이쿠와 센류 모두가 에도시대 하이카나에서 분리되어서 점점 정형화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주제 의식을 고수하는 독립된 장르로 각각 발전하게 되었다. 하이쿠가 진지한 분위기와 여운을 남기지만, 센류는 일상생활의 풍자, 신세 한탄 등 풍속적인 주제로 정착되었다. 이를 시조와 비유한다면 하이쿠는 정형 시조에 해당하고, 센류는 사설시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이쿠와 센류의 차이점을 비교하면, 하이쿠에서는 계절적 상징어인 키고(季語)가 반드시 들어가지만, 센류에서는 생략해도 무방하는데, 드물게 무키(無季)라 하여 키고가 없는 하이쿠가 있으므로 이것으로는 완벽한 구별법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키고가 없는 하이쿠=센류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 각각 독자적인 장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하이쿠에서 반드시 사용되는 키레지(매듭말)가 센류에는 필수가 아니며, 하이쿠는 주로 자연적인 대상을 주제로 하지만, 센류는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 등도 주제가 될 수 있다.
하이쿠는 주로 고전 일본어에서 차용한 어휘를 사용하며, 사용할 수 있는 키레지(매듭말)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지만, 센류는 구어체의 어휘도 종종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최근 일본에서는 재치가 넘치는 각종 센류 창작대회, 즉 해마다 실버 센류 공연대회가 열린다. 실버 센류 몇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 “두 사람의 연애담/처음 들은/장례식 날 밤”, “개찰구 안 열려/확인했더니/진찰권”, “홀딱 반했던/보조개도/지금은 주름 속”, “무농약에/집착하면서/내복약에 절어 산다”, “몇 줌 없지만/전액 다 내야하는/이발료” 등 해학과 재치가 넘치는 작품들이 많다.
단가는 글자 수가 5, 7, 5, 7, 7, 총 31자로 단가의 앞부분 5, 7, 5 세 음절을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 하이쿠(俳句)다. 단가 혁신운동을 벌렸던 나오부미는 고전문학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목적과 최초로 단가에서 사생 기법이라는 새로운 문장을 시도하는 등 단가 혁신에 이바지했다. 나오부미가 기존의 단가집과 다르게 『촌우일기』 에서 와카와는 다른 기법인 사생을 시도한 대표적인 단가를 전기, 중기, 후기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기> 본 대로 위로가 되는 바다와 산도, 여행일 때는 슬프구나
<중기> 죽었다고 생각한 문가의 오래된 버드나무, 그것조차 봄은 피어오르는구나
<후기> 병든 몸은 덧없는 것이여, 다른 사람보다 이십 일 늦게 옷을 갈아입는구나
우리나라에서 정형시로 남아 있는 시가 장르는 시조이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생겨난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로 초장, 중장, 종장, 3장 45자 내외로 구성되며, 당시 유학자들의 정신과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형식으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현대시조로 발전했다.
일본의 5,7,5음 17자의 하이쿠나 5, 7, 5, 7, 7, 총 31자로 단가보다 글자 수가 많고, 주제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시가 장르이지만, 그림을 그리듯이 이미지로 구성되는 하이쿠처럼 현대시조도 노래로 불린 과거의 전통에서 현대시조로 거듭나려면 관념어, 추상어를 글자 맞추기 놀음에서 벗어나 현대 정서를 이미지로 묘사하는 시조의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