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인문학] 밀당 잘하는 노인이 되려면

“간밤에 피를 토하고 쓰러져 한숨도 못잤어.”

사극에 나오는 대사가 아닙니다. 며느리의 안부 전화에 시어머니가 한 실제 대답입니다. 처음 들었을 땐 깜짝 놀랐으나 자주 그러시니 이제는 ‘그래도 아직은 잘 살아있다’는 말로 받아들인다는 지인의 이야기에 웃으면서 한편 저의 시어머니 화법과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간밤에 119 부를 뻔했다. 이러다 죽는구나 싶었다.”

저희 시어머니도 제가 새댁이었던 30년 전부터 안부 전화를 드리면 열에 다섯은 ‘응급, 마지막, 식음 전폐, 마비’ 등과 같은 머리가 쭈뼛 서게 하는 말들로 안부를 전하십니다. 저도 처음에 무척 놀랐지만 반복되는 충격은 다반사처럼 일상이 되기 마련이지요.

 

반면 친정엄마는 무조건 괜찮다고만 하십니다. 처음엔 진짜 문제가 없는 줄 알았는데, 머리 안에서 터진 피가 눈에 고여 혼자서 병원에 다니시는 걸 우연히 알게 된 후, 자주 찾아뵈려고 합니다. 어차피 물으면 다 괜찮다고만 하실 테니까요.

 

아이들이 장성하고 이제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나는 자식에게 어떤 노인 부모가 되면 좋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정예서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밀당하는 부모”가 가장 이상적이라 하십니다. 저도 막연히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반반 섞은 중도를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밀당’이라는 말을 들으니 ‘바로 그거야!’ 싶습니다. 그런데 시니어분들에게 제안하면 의외로 ‘못하겠다’는 분이 많다고 덧붙이십니다. ‘밀당’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밀당하기’를 잘하려면 나 자신의 정서가 먼저 안정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자식에게 혹시라도 외면받을까 시시콜콜 아프고 힘든 걸 투정하는 부모도, 자식에게 폐 끼치는 게 자존심 상하고 싫어 무조건 침묵하는 부모도 문제를 회피하는 심리 기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노인 실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우울증 비율은 13.5%로 8명 중 1명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우울증을 겪지 않더라도 노인성 질환이나 외로움으로 마음이 위축되면 자식과 밀당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 게 당연하지요.

 

그럼 왜 많은 노인이 우울할까요?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그 답으로 인간의 기본 욕구를 언급합니다. 사람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단순히 의식주만 제공받는 것이 공허하고 의미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자기를 넘어서는 대의를 추구하는 본연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초월’ 욕구라고도 하는데, 매슬로의 욕구 위계 중 가장 위에 있는 자아실현 단계보다 더 위에 존재하는 욕구입니다. 노년이 되면 성취를 통해 자기를 증명하려는 자아실현 욕구는 점점 줄어듭니다. 하지만 언젠가 닥칠 죽음의 공포와 허무를 극복하려면 안락한 생활에 더해서 무언가 의미 있는 ‘초월’ 행위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건 자기 자신이 아닌 타자의 행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병이 나면서까지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해서 자식에게 보내주는 어머니는 무조건 희생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 성당, 절에 부지런히 활동하시는 부모님도 몸이 편한 것보다 ‘초월’의 욕구를 충족하는 편이 만족감이 크기에 주변에서 만류해도 멈추지 않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을 키우고 돌보는 행위도 다른 존재를 돕는 행위로 ‘초월’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요.

 

이런 ‘초월’ 욕구를 충족하며 사는 부모님은 자식을 당기기만 하지도, 밀기만 하지도 않고 평소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다 필요하면 도움을 당당히 요청하는 밀당의 기술을 사용하는 게 힘들지 않을 겁니다. 흔히들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건강과 경제력이 필수라 믿지만 하나 더, 나 이외의 다른 존재를 위한 ‘초월’ 행위를 추가해야 합니다. 우울 없는 노년을 맞이하기 위하여 지금부터라도 나를 넘어선 ‘대의’를 위한 행동 하나,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K People Focus 차경숙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수석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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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8.18 08:00 수정 2026.08.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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