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동 이케바나 스튜디오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 노지은 원장이 말하는 12년의 이케바나, 그리고 꽃을 통해 발견하는 삶의 여백

“꽃을 많이 꽂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이케바나 스튜디오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 노지은 원장

 

꽃을 바라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화려한 색과 풍성한 볼륨에서 아름다움을 찾지만, 누군가는 비어 있는 공간과 가느다란 선 하나에서 더 깊은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일본 전통 꽃꽂이인 이케바나는 바로 그 ‘비움의 미학’에서 출발한다. 꽃을 많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소재가 가진 선과 형태, 계절의 기운을 살려 하나의 공간을 완성한다.

 

강남구 논현동에서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를 운영하는 노지은 원장은 이케바나를 처음부터 자신의 직업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아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였다. 작품의 형태가 마음에 들었고, 서양식 꽃꽂이와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자신의 취향과 잘 맞았다. 그렇게 시작한 배움은 어느새 12년이라는 시간이 됐고, 지금은 직접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이케바나를 가르치는 교수자의 자리까지 이어졌다.

 

“처음에는 그냥 작품이 멋있고 제 취향에 잘 맞아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배우다 보니 제 성향과 굉장히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됐죠.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지금은 제가 배운 것을 다른 분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 사진 =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

 

노 원장이 설명하는 이케바나의 가장 큰 특징은 ‘선과 여백’이다. 일반적으로 익숙한 서양 꽃꽂이가 아름다운 꽃을 풍성하게 배치해 공간을 채우는 방식이라면, 이케바나는 비워진 공간까지 작품의 일부로 바라본다. 꽃 한 송이의 방향과 가지가 뻗어나가는 선, 소재 사이의 거리까지 고려해 전체적인 균형을 만들어낸다.

 

“서양 꽃꽂이가 채우는 꽃꽂이라면 이케바나는 비우는 꽃꽂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이케바나에도 여러 가지 표현 방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꽃의 양보다는 선과 여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꽃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이 자연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함께 바라보는 거죠.”

 

▲ 사진 =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

 

이케바나는 일본에서 약 6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문화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꽃을 장식하는 행위를 넘어 꽃을 꽂는 방향과 각도, 형태 등에 일정한 규칙과 체계가 만들어지면서 하나의 예술적 영역으로 발전했다. 시대와 미감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유파가 생겨났고, 노 원장이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그중에서도 오하라류 이케바나다.

 

스튜디오 벽면에는 일본에서 발급받은 수료증과 자격증이 정갈하게 걸려 있다. 오랜 시간 이케바나를 배워온 과정과 전문성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현장에서 마주한 노 원장은 다소 수줍고 차분한 인상이었지만, 이케바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자연과 소재, 교육과정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으로 이어졌다. 조용한 말투 안에 자신이 오랜 시간 걸어온 분야에 대한 확실한 열정이 느껴졌다.

 

노 원장이 이케바나를 가르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단순한 기술 전달이 아니다. 이케바나는 꽃의 아름다운 부분만 골라 보기 좋게 꽂는 것으로 끝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을 이해하고 소재의 특징을 파악하며, 오랜 시간 반복해서 표현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케바나에서는 경력과 경험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케바나는 꽃의 얼굴만 예쁘게 뽑아서 만드는 게 아니에요. 자연을 이해해야 하고 소재를 이해해야 하죠. 오래 하면서 쌓이는 경험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배우는 분들도 자신에게 맞는 선생님을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노지은 원장 강의 모습 (사진 =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의 교육과정은 이케바나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기초부터 단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처음부터 자유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형태와 규칙을 익히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기본기를 쌓은 뒤 점차 자신만의 표현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꽃을 한 번도 다뤄보지 않은 사람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 과정은 취미와 자격을 별개의 영역으로 나누지 않는다.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라 꾸준히 배우고 과정을 수료하면 단계별 수료증을 취득할 수 있으며, 이후에는 티칭을 할 수 있는 자격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지만 훗날 새로운 직업이나 활동으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열어둔 구조다.

 

“사람 앞일은 모르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지금 이 자리까지 왔으니까요. 처음부터 자격증을 따겠다고 시작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배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이 과정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 사진 =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

 

스튜디오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디자인이나 조형적인 표현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케바나를 배운다. 다도나 도자기, 그림, 서예 등을 경험하다가 이케바나로 관심을 넓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다도와 이케바나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도에서는 계절에 맞는 작은 꽃이나 소재를 찻상 주변에 장식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다도를 배우던 사람이 꽃 장식을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어 이케바나를 찾기도 하고, 반대로 이케바나를 배우면서 도자기나 다른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하나의 취미가 또 다른 취미로 이어지며 개인의 취향과 경험이 넓어지는 셈이다.

 

▲ 사진 =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

 

공간 곳곳에 놓인 화기 역시 이케바나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서양식 꽃꽂이에서 흔히 사용하는 플로럴 폼, 이른바 오아시스를 사용하기보다 도자기 화기와 침봉을 활용한다. 화기에 물을 담고 침봉을 이용해 꽃과 소재를 고정하면서 꽃뿐 아니라 물과 자연의 일부까지 작품 안에 담아낸다.

 

“이케바나를 하다 보면 화기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겨요. 일본에서 좋은 화기를 구입하기도 하고, 직접 도자기 공방에 가서 자신이 쓸 화기를 만들어보기도 하죠. 그러면서 취미가 또 다른 취미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 사진 =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

 

노 원장은 앞으로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의 활동을 수업에만 머물게 하지 않을 계획이다. 수강생들과 일본 현지를 찾아 직접 수업을 경험하는 기회를 만들고, 매년 진행하는 전시회 역시 다양한 공간과 방식으로 확대하고 싶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특히 도자기나 동양화 등 다른 예술 분야와 협업해 이케바나를 새로운 형태로 보여주는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성공보다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스튜디오다. 이케바나를 가르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체력과 노동을 필요로 한다. 이른 아침 꽃시장을 찾아 재료를 준비하고, 수업에 필요한 꽃을 다듬고 정리한 뒤 수강생의 수준에 맞춰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그럼에도 노 원장이 이 일을 오래 이어가고 싶은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선배들이 여전히 꽃을 다루며 교육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이 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지금 저를 믿고 따라와 주는 제자들이 있으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내서 오래도록 이 교실을 운영하고 싶어요. 큰 욕심은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진 =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

 

이케바나를 비롯한 공방문화가 앞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환경도 중요하다고 본다. 취미와 문화생활은 기본적인 의식주와 달리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지속적으로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전후해 다양한 취미와 소비문화가 활발해졌다가 경기 상황에 따라 다시 위축되는 모습을 경험하면서, 공방문화 역시 개인의 노력만으로 좌우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이케바나라는 문화를 알리고, 아직 이케바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 번쯤 경험해볼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알아야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관심이 생겨야 배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현대인에게 이케바나는 어떤 의미일까. 노 원장은 꽃과 식물을 직접 만지고 바라보는 시간이 사람에게 생각보다 큰 힘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케바나는 사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마주한다. 봄에는 봄의 소재를, 여름에는 여름의 소재를, 가을과 겨울에는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을 작품에 담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소재가 달라지고 표현도 달라진다.

 

“꽃을 직접 만지고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계절을 느끼게 돼요.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서 자연의 변화를 생각하고 자연을 대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이케바나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진 =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

 

일본에서는 이케바나를 ‘화도’라고도 부른다. 꽃을 뜻하는 ‘화’와 길을 뜻하는 ‘도’가 결합된 말이다. 단순히 꽃을 잘 꽂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꽃을 통해 하나의 길을 걸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 원장에게 이케바나는 바로 그런 과정이다. 꽃을 통해 자연을 바라보고, 자신을 돌아보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신의 표현을 찾아가는 일이다.

 

물론 이케바나가 늘 편안한 힐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형태와 규칙을 익히고 반복해서 연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견디고 배움을 이어가다 보면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자신만의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새로운 가능성까지 발견할 수 있다.

 

“꽃이나 식물을 좋아하신다면, 혹은 디자인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권하고 싶어요. 저 역시 취미로 시작했지만 이 일을 하면서 받은 것이 정말 많았거든요. 단순히 꽃을 예쁘게 꽂는 것 이상의 충족감이 분명히 있습니다.”

 

▲ 사진 =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의 공간에서 만난 꽃들은 화려하게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비어 있는 공간이 있었기에 한 송이의 꽃과 한 줄기의 가지가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벽면에 걸린 일본의 수료증과 자격증, 곳곳에 놓인 도자기 화기와 작품들은 노 원장이 지나온 12년의 시간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빠르게 무언가를 채우는 데 익숙한 시대에 이케바나는 오히려 비우는 법을 이야기한다. 꽃을 꽂는 손끝에서 계절을 느끼고, 자연의 선을 바라보며 잠시 자신의 속도를 늦추는 것. 노지은 원장이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를 통해 전하고 싶은 것도 결국 꽃 그 자체를 넘어, 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인지 모른다.

 

더 자세한 수업과 전시 및 활동 정보는 ‘이케바나마리포사 플라워’의 공식 블로그(클릭 시 연결)와 인스타그램(클릭 시 연결) 등 온라인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성 2026.08.16 19:35 수정 2026.08.1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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