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양평동 '사르토 디 루쏘' 이후범 테일러, "좋은 수트는 치수가 아니라 사람을 읽는 것에서 시작됩니다"…패션의 모든 공정을 거쳐 비스포크에 닿다

“멋과 근사함에는 정답이 없어… 입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

▲ 영등포 양평동 '사르토 디 루쏘' 이후범 테일러

 

최근 패션은 더 이상 유행을 따라 소비하는 문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이자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몸에 맞는 옷을 넘어 자신의 취향과 삶의 방식까지 담아낼 수 있는 맞춤복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특히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제작되는 비스포크(Bespoke) 테일러링은 기성복이 채워주지 못하는 만족감을 제공하며 새로운 패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영등포구 양평동에 자리한 비스포크 테일러샵 '사르토 디 루쏘(Sarto di Lusso)'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 상담부터 재단, 제작 과정까지 이후범 테일러가 직접 책임지는 이곳은 단순히 몸에 맞는 수트를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취향과 이미지를 옷으로 구현하는 작업실에 가깝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이곳은 어떤 곳인가"라는 질문을 건네자 이후범 테일러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짧게 답했다.

 

"제가 직접 운영하면서 신사복 맞춤복을 제작하는 비스포크 테일러샵입니다.“

 

짧은 소개였지만 그 안에는 그의 일하는 방식이 모두 담겨 있었다. '직접 운영한다'는 말은 단순히 매장을 관리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고객을 만나 상담하고, 원단을 선택하며, 재단과 제작을 관리하고, 마지막 피팅까지 모든 과정에 자신의 손과 눈을 거친다는 뜻이었다.

  

▲ 사진 = 사르토 디 루쏘

 

사실 그의 출발점은 테일러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부터 꿈꾸던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자연스럽게 관련 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패션업계 실무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특정 분야만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류가 만들어지고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경험하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찾고자 했다.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세일즈 업무를 경험했고, 의류의 구조를 설계하는 패턴실에서는 옷의 뼈대를 만드는 일을 배웠다. 이후 국내 대형 의류 수출기업과 디자인실을 거치며 디자인과 생산 시스템 전반을 경험했다. 하나의 옷이 탄생하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과정을 몸소 익힌 셈이다.

 

다양한 경험은 결국 한 가지 결론으로 이어졌다.

 

'내가 가장 오래, 가장 깊이 하고 싶은 일은 결국 사람 한 명만을 위한 옷을 만드는 일이다.'

그는 스물다섯 살 무렵부터 비스포크 테일러링에 본격적으로 매료됐다. 단순히 예쁜 옷을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사람의 체형과 취향, 라이프스타일까지 고려해 단 한 벌의 옷을 완성하는 과정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테일러샵을 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수년간의 준비 끝에 지난해 '사르토 디 루쏘'라는 이름으로 그 계획을 현실로 만들었다.

 

▲ 사진 = 사르토 디 루쏘

 

'사르토 디 루쏘'가 추구하는 수트 역시 그가 걸어온 길만큼이나 입체적이다.

 

기본적인 분위기는 영국식 테일러링에서 출발한다. 단정하면서도 품격 있는 실루엣, 시간이 지나도 쉽게 질리지 않는 클래식한 무드, 그리고 절제된 럭셔리함이 바탕이다.

 

하지만 그는 특정 국가의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영국식 수트가 가진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이탈리아 테일러링 특유의 유려한 실루엣과 감각적인 디테일을 더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한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결과물은 결국 '사르토 디 루쏘'만의 감성으로 이어진다.

 

그는 "영국 스타일만 고집하거나 이탈리아 스타일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점을 조화롭게 담아 저만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 사진 = 사르토 디 루쏘

 

이후범 테일러가 생각하는 경쟁력은 디자인 이전에 제작 방식에 있다.

 

국내 맞춤복 시장에는 많은 테일러샵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상담을 진행하는 사람이 제작 과정까지 직접 이해하고 관리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상당수 업체가 외부 공장이나 공방을 통해 제작을 진행하는 반면, 그는 매장에서 직접 재단을 진행하고 제작 과정 전체를 관리한다.

 

단순히 고객의 치수를 측정하는 수준을 넘어 패턴과 의류 설계, 봉제 과정까지 모두 이해하고 있어야 진정한 비스포크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맞춤복은 사이즈만 재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손님과 상담하는 능력도 필요하고, 옷의 구조를 이해하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결국 맞춤복은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과 옷을 만드는 능력이 함께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의외로 재단 기술보다 '소통'이었다.

 

많은 사람이 좋은 수트는 기술력이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가장 먼저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자리에서 입을 옷인지, 어떤 이미지를 원하는지, 평소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심지어 본인이 생각하는 '멋'이 무엇인지까지 충분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만족스러운 결과물의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멋있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입는 사람이 어떤 이미지를 원하고 어떤 모습을 꿈꾸는지를 최대한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 사진 = 사르토 디 루쏘

 

그는 자신의 하우스 스타일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객에게 다른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린다고 판단되면 자신이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도 과감하게 내려놓는다.

 

"결국 옷은 제가 입는 게 아니라 고객이 입는 옷이니까요. 저희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보다 고객이 만족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 한마디에는 그가 왜 수많은 패션 분야를 거쳐 결국 테일러링을 선택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사진 = 사르토 디 루쏘


그 철학은 실제 고객과의 경험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매장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결혼을 앞둔 한 커플이 예복 상담을 위해 '사르토 디 루쏘'를 찾았다. 이미 비스포크 수트를 여러 차례 맞춰본 경험이 있는 고객이었다. 오랫동안 이용하던 테일러샵이 문을 닫으면서 새로운 곳을 찾던 중이었고, 양평동은 물론 청담과 종로, 이태원 등 이름난 테일러샵을 직접 찾아다니며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날 상담은 예정된 마감 시간을 훌쩍 넘겼다.

 

수트 한 벌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결혼식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으로 이어졌고, 어느새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긴 대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범 테일러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당시 '사르토 디 루쏘'는 이제 막 문을 연 신생 브랜드였다. 이미 여러 유명 테일러샵을 경험한 고객이 자신을 선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주일 뒤 한 통의 연락이 걸려왔다.

 

"고민 끝에 여기서 예복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뜻밖의 결정이었다.

 

이후범 테일러가 이유를 묻자 고객은 ‘인정’이라는 예상보다 더 큰 선물을 안겨줬다.

 

15곳이 넘는 테일러샵을 상담했지만 가장 신뢰가 갔던 사람이 바로 이후범 테일러였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결과보다 과정이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완성된 예복에 대한 만족도 역시 높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래 남은 것은 '가장 신뢰가 갔다'는 고객의 한마디였다.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딛은 브랜드였기에 그 말은 단순한 칭찬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후범 테일러는 그날을 지금도 자신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 사진 = 사르토 디 루쏘

 

그는 "좋은 수트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기술은 기본이고, 그 위에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 더해져야 비로소 비스포크가 완성된다고 믿는다.

 

"멋있어 보이는 것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멋과 고객이 생각하는 멋은 다를 수 있죠. 결국 중요한 건 제가 얼마나 잘 만들었느냐보다 고객이 원하는 모습을 얼마나 정확하게 구현했느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하우스 스타일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고객에게 다른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린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기존의 디자인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옷은 결국 고객이 입는 것이니까요. 제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가장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범 테일러가 패션 아이콘으로 지드래곤을 꼽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많은 사람이 화려한 스타일만 떠올리지만, 그가 주목하는 것은 옷이 아니라 태도다.

 

이미 정답처럼 여겨지는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들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과정이야말로 패션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패션은 기존의 기준 안에만 머무르면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업계에서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들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런 도전 정신이 오늘날 지드래곤을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 사진 = 사르토 디 루쏘

패션산업 전반에 대한 생각도 분명했다.

 

맞춤복은 단순히 치수를 재고 옷을 판매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상담 능력과 패턴 설계, 제작 기술, 스타일링 감각까지 다양한 전문성이 함께 요구되는 직업이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맞춤복을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 정도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어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외부 제작 방식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결국 업계 전체의 신뢰도도 함께 떨어질 수 있습니다. 맞춤복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패션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팝과 K-콘텐츠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 패션은 아직 그만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뛰어난 디자이너와 기술자는 많지만 이를 세계 시장으로 연결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과 전문적인 지원은 아직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패션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정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산업 전체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국내에도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사진 = 사르토 디 루쏘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사르토 디 루쏘'의 목표는 화려하지 않다.

 

무엇보다 고객들에게 "맞춤복이 필요하면 한 번쯤 꼭 상담받아보고 싶은 곳",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라는 평가를 듣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그 이후의 꿈도 있다.

 

언젠가는 자신이 오랫동안 존경해온 패션 아이콘 지드래곤의 맞춤 의상을 직접 제작하는 것.

쉽지 않은 목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 꿈 역시 그에게는 오늘도 한 땀 한 땀 수트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는 맞춤복을 고민하는 소비자들에게도 한 가지 조언을 남겼다.

 

"맞춤복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업체가 정해주는 대로 따라가기보다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을 먼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몇 장이라도 준비해 오시고, 내가 어떤 분위기를 원하는지만 정리해 오셔도 상담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어 "한 번의 실패 경험만으로 맞춤복 전체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업체마다 제작 방식과 철학이 모두 다른 만큼 충분히 상담해 보고 자신과 가장 잘 맞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만족도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 사진 = 사르토 디 루쏘

 

인터뷰를 마치고 작업실을 둘러보니 화려한 장식보다 오래된 재단 도구와 원단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공간에는 '좋은 수트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그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패션업계의 다양한 현장을 거치며 의류가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과정을 경험한 끝에, 그는 결국 가장 본질적인 작업인 비스포크 테일러링을 선택했다. 한 사람의 체형을 넘어 취향과 이미지, 그리고 삶의 순간까지 한 벌의 옷 안에 담아내려는 그의 작업은 단순한 맞춤복 제작을 넘어 하나의 디자인 철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 사진 = 사르토 디 루쏘

 

아직 브랜드의 역사는 길지 않다. 그러나 고객과의 대화를 가장 중요한 재단 도구로 삼는 이후범 테일러의 방식은 시간이 쌓일수록 더욱 단단한 브랜드의 색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사르토 디 루쏘'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와 상담은 공식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

https://www.sartodilusso.co.k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arto_di_lusso

블로그 

"품격을 입다" Sarto di Lusso Bespoke : 네이버 블로그

작성 2026.08.13 22:45 수정 2026.08.1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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