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조경·수목 분야 전문가들이 폴란드와 네덜란드의 대형 수목 생산농장과 유통 현장을 방문해 국내 조경수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했다.
이번 현장 방문은 8월 7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됐다. 방문단은 폴란드의 대형 묘목 생산·판매업체인 Szkółka Szmit을 비롯해 네덜란드의 수목·화훼 생산농장, 플러그묘 생산시설, 신품종 라이선스 기업, 정원과 공원 등
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번 일정에는 황수영 조경마루 대표, 김오경 오경농장 대표, 김원식 엠케이화훼유통 유통담당, 서필석 학구식물원 대표, 박현주 예원조경건설 대표, 장일웅·백승옥 대한종묘원 관계자, 안정록 루트릭스 대표, 송동근 대영수림원장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해외 수목을 단순히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품종을 선정하고 어떤 규격으로 생산하며, 재배 이력과 품질을 어떻게 관리하고, 조경현장에 식재한 뒤 어떻게 유지관리할 것인지까지 전 과정을 살펴봤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연결된 유럽의 수목산업
8월 8일 방문단은 폴란드의 Szkółka Szmit을 찾아 샘플장과 판매장을 둘러봤다. 이 업체는 대규모 생산시설과 다양한 수목 품종을 보유한 전문 생산·판매업체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전문 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참가자들은 유럽의 수목산업이 농장별 특화 생산과 규격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수목의 수고와 근원직경, 수관 폭, 수형, 분지 형태, 뿌리분 상태 등을 기준으로 상품을 구분하고, 출하 시기와 최종 사용처에 따라 생산·관리하는 방식이다.
조경 전문가들은 이러한 규격화가 설계와 시공의 정확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라고 설명했다. 설계 단계에서 요구한 규격의 수목을 실제 현장에서 확보할 수 있어야 식재 공정과 예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조경수 시장은 같은 수종이라도 농장별 규격과 수형, 뿌리분
상태, 품질 편차가 큰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현장 반입 후 수목 교체가 발생하거나, 설계 의도와 실제 식재 결과가 달라지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방문단은 국내 산업도 개별 농장 중심의 생산에서 벗어나 품종·규격·품질·가격·재배 이력·출하 가능 시기를 함께 관리하는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 농장에서 확인한 플러그묘·컨테이너 생산
네덜란드에서는 Kolster BV를 비롯해 플러그묘 및 관목류 생산농장, P9 규격 재배농가, C2·C3 사이즈 재배농가, 신품종 라이선스 회사 Van Vliet 등을 방문했다.
온실 안에는 색상과 품종별로 구분된 어린 식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돼 있었고, 노지에는 수국과 숙근초, 관목류가 상품 규격에 맞춰 재배되고 있었다. 붉은색과 노란색 등 색상별로 구획된 재배지는 생산량과 출하 시기를 한눈에 관리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P9는 소형 컨테이너 규격으로 유통되는 어린 묘목을 뜻하며, C2·C3는 용기 크기와 생육 단계에 따른 컨테이너 수목 규격이다. 조경 전문가들은 이러한 단계별 생산이 국내에도 확대될 경우 작은 묘목을 수입해 국내 환
경에서 순화·생장시킨 뒤 조경현장에 공급하는 방식이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유럽에서 생산된 수목을 그대로 국내에 들여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은 여름철 고온다습한 환경과 집중호우, 겨울철 한파가 반복되고 있어 유럽 중부나 북서부의 기후와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품종 도입 전에는 내한성뿐 아니라 고온 적응성, 장마철 뿌리 활력, 토양 배수성, 일조량, 병해충 저항성, 국내 개화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같은 품종이라도 생산지와 국내 식재지의 기후·토양 조건에 따라 생육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목 수입의 핵심은 ‘운송 이후’ 관리
조경 전문가들은 해외 수목 수입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로 운송 이후의 순화와 활착 관리를 꼽았다.
수목은 장거리 운송 과정에서 수분 부족과 온도 변화, 뿌리 손상, 잎과 가지의 물리적 손상을 겪을 수 있다. 특히 뿌리분 수목은 분의 결속 상태와 수분 유지 상태가 활착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수입 단계에서 다음과 같은 정보가 함께 관리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 • 생산농장과 원산지
- • 파종·삽목·접목 등 번식 방식
- • 재배 기간과 이식 횟수
- • 컨테이너 규격 또는 뿌리분 크기
- • 수형과 가지치기 이력
- • 병해충 관리 이력
- • 출하 전 관수·전정·포장 상태
- • 국내 도착 후 순화 및 식재 관리 방법
전문가들은 국내 반입 뒤 일정 기간 별도 공간에서 생육 상태를 관찰하고, 국내 기후에 적응시키는 순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현장 식재 전까지 수분·배수·차광·지주목 설치·전정 여부 등을 품종별로 달리 관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경마루, 해외 우수품종 국내 도입의 가교 역할
조경마루는 2016년부터 해외 식물을 수입·유통해 온 전문기업으로, 목본류·숙근초·구근·종자 등 다양한 해외 식물자원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황수영 대표는 농가에 해외 품종 정보를 제공하고, 국내 조경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식물 포트폴리오를 발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도 유럽의 생산농장과 신품종을 직접 확인하며 국내 기후와 조경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품목을 검토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해외 우수품종 도입이 ‘품종 발굴→수입 가능성 검토→검역→국내 순화→시험재배→조경현장 실증→정식 유통’의 단계로 체계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품종의 경우 이름과 외관만으로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보다 국내에서의 생육 안정성, 유지관리 비용, 병해충 발생 가능성, 대량 공급 가능성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종묘원, 생산·조달·현장 연결 기대
대한종묘원은 전국 조달을 통한 관급 납품과 정원·조경 시공 분야에서 수목을 공급해 온 경험을 갖고 있다.
장일웅·백승욱 대한종묘원 관계자는 유럽의 생산방식과 국내 조경현장의 수요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해외에서 좋은 품종을 찾는 것과 실제 국내 현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경공사는 설계도서에 명시된 규격과 수량을 정해진 시기에 확보해야 하며, 현장 반입 후에도 식재 시기와 공정에 맞춰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수목 생산농장과 시공업체를 연결하고, 공급 가능 물량과 출하시기를 사전에 확인하는 전문 유통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수목 공급계약에도 단순한 수량과 가격뿐 아니라 수형 기준, 뿌리분 상태, 하자 기준, 납품 시기, 대체 가능 품종, 식재 후 관리 책임 등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루트릭스, 수목 유통의 디지털 전환 추진
안정록 대표가 이끄는 루트릭스는 수목의 수종·규격·수형·가격·재배농장 등의 정보를 데이터화해 생산농장과 조경 시공현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루트릭스는 2026년 2월 45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으며, 당시 회사 측은 약 700개 수목전문농장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102개 조경시공기업과 거래하고 누적 매출 85억 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국내 조경수 거래에서 반복되는 수급 불확실성, 가격 편차, 품질 차이, 납기 지연 문제를 데이터로 줄이려는 시도다.
향후 플랫폼에 유럽 생산농장의 품종과 규격, 가격, 공급 가능 시기, 검역 관련 정보, 국내 시험재배 결과 등을 축적하면 수입업체와 생산농가, 설계·시공기업이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조경 전문가들은 수목 데이터가 단순한 상품 목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동일 수종이라도 수형과 근원직경, 이식 횟수, 생산지, 생육환경에 따라 실제 현장 품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사진과 규격뿐 아니라 재배 이력과 생육 데이터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동근 원장 “검증된 농가 인증제 필요”
송동근 대영수림원장은 국내 조경현장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농장과 국내 시장의 차이를 비교·검토했다.
그는 국내 조경시장에서 새로운 수종과 품종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단순히 해외 수목을 들여오는 것을 넘어, 국내 환경에 적합한 품종을 선별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농가를 인증하는 방식으로 검증된 생산농가가 보증된 품질의 수목을 납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전문가들은 농가 인증제가 도입될 경우 품종의 진위, 규격 준수 여부, 재배 이력, 출하 품질, 하자 발생률 등을 평가기준에 포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증이 단순한 홍보 수단이 아니라 실제 품질과 공급 책임을 보증하는 체계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수목 수입, 국가 차원의 지원체계 필요
방문단은 수목 수입을 개인이나 기업의 사업 영역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조경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수목을 국내에 도입하려면 품종 선정뿐 아니라 식물검역, 수입 가능 여부, 원산지별 제한, 운송, 통관, 국내 순화와 재배, 현장 식재 후 관리까지 다양한 절차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정책과 산업 과제가 제시됐다.
① 해외 우수품종 발굴
② 유럽 생산농장과 국내 기업의 직접 거래 확대
③ 수입·검역 관련 전문 지원체계 강화
④ 국내 순화·양묘 기술 개발
⑤ 수목 품종·규격·가격·재배 이력 데이터 구축
⑥ 해외 수목 전문기업과의 공동 연구
⑦ 국내 조경현장 적용 및 실증사업
⑧ 검증된 생산농가 인증제 도입
⑨ 수입수목의 품질·하자 기준 마련
⑩ 수목 생산·유통 전문인력 양성

“유럽의 나무가 아니라 유럽의 시스템을 배워야”
이번 방문단 관계자는 “유럽에서 나무를 많이 가져오는 것이 방문의 목적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유럽의 선진 생산농장을 직접 보고, 어떤 품종을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며, 어떻게 상품화하고 유통하는지를 확인해 한국 조경산업에 필요한 새로운 품종과 생산·유통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조경마루의 해외 품종 발굴 및 수입 경험, 대한종묘원의 생산·유통·조달 네트워크, 루트릭스의 수목 데이터와 디지털 유통기술, 국내 조경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들의 실무 경험이 결합한다면 ‘한국형 글로벌 수목 공급망’ 구축도 가능하다는 기대가 나온다.
이번 유럽 현장 방문은 국내 조경수 산업이 단순한 수목 거래를 넘어 품종 발굴, 생산규격 관리, 검역, 순화, 데이터 구축, 현장 실증, 사후관리까지 연결된 산업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자리였다.
전문가들은 “좋은 나무를 들여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좋은 품종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검증하고, 유통하고, 현장에서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함께 들여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럽의 좋은 수목을 한국의 기후와 조경현장에 맞게 정착시키고, 한국의 조경산업을 세계시장과 연결하기 위한 이번 교류가 국내 수목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