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투자와 자금 운용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충분한 검토를 거친 사업도 시장 상황이 바뀌면 손실을 낼 수 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경영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다면 기업 활동이 지나치게 위축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판단할 때 거론되는 개념이 ‘경영상 판단의 원칙’이다.
경영자가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렸다면, 결과적으로 손실이 발생했다는 사정만으로 책임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다만 이 원칙은 경영자에게 포괄적인 면책권을 주는 제도가 아니다. 경영자가 “경영상 판단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배임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은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임무를 위반해 자신이나 제3자에게 재산상 이익을 주고, 회사 등 본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해야 한다고 본다. 손해에는 실제 발생한 손실뿐 아니라 구체적인 손해 위험도 포함될 수 있다.
손실보다 ‘결정 당시의 상황’을 살펴야
경영상 판단이 문제 된 사건에서는 결과보다 의사결정 당시의 상황이 중요하다. 법원은 사후에 드러난 손실만 놓고 판단하지 않고, 당시 경영자가 어떤 정보를 확보했는지와 선택 가능한 대안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핀다.
주요 검토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회사가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고 검토했는지다. 사업 전망, 거래 상대방의 재무 상태, 자금 회수 가능성과 예상 위험을 조사했는지가 판단 대상이 된다.
둘째, 결정이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는지다. 회사의 장기적인 안정이나 구조조정을 위한 조치였는지, 경영자 개인이나 특수관계인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거래였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셋째, 의사결정 과정이 합리적이었는지다. 이사회 심의, 내부 검토, 외부 전문가의 자문과 위험 분석이 실제로 이뤄졌는지를 확인한다.
대법원은 경영상 판단과 관련된 배임 사건에서 경영자가 회사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고 주장하더라도, 결정의 경위와 동기, 거래 내용, 손실 가능성 등을 종합해 배임의 고의와 불법이득 의사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계열사 지원이라고 모두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계열사에 자금을 빌려주거나 채무를 보증하는 행위는 경영상 필요에 따라 이뤄질 수 있다.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막거나 주요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원받는 회사가 사실상 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금을 제공하거나, 담보와 회수 대책 없이 돈을 빌려줬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대법원은 채무 변제 능력을 잃은 상대방에게 상당하고 합리적인 회수 조치 없이 회사 자금을 대여했다면, 계열사 지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대로 지원 대상 회사가 단순히 채무초과 상태라는 사정만으로 모든 자금 지원을 배임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지원 목적과 회생 가능성, 사업상 필요, 담보와 회수 방안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계열사 간 자금 이동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배임 여부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거래 조건이 일반적인 시장 조건과 얼마나 달랐는지, 회사가 부담한 위험에 상응하는 대가를 확보했는지, 지원 결정에 사익 추구가 개입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이사회 의결이 있었다고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아
이사회나 감사위원회의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은 의사결정 절차를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형식적인 의결만으로 결정의 합리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사회에 부정확하거나 불충분한 정보가 제공됐다면 적법한 절차로 평가받기 어렵다. 이해관계가 있는 임원이 심의에 관여했거나 반대 의견이 기록되지 않은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민사상 이사의 책임이 문제 된 판례에서도 법원은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조사한 뒤 회사의 최대 이익에 부합한다고 합리적으로 믿고 판단했는지를 중요하게 봤다. 단순히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 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면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법령을 위반한 행위까지 경영상 판단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할 수도 없다. 대법원은 2026년 1월 선고한 민사 판결에서 이사가 기업 활동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법령을 위반한 경우, 원칙적으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배임죄에서는 ‘고의’ 입증도 중요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려면 경영자가 회사에 손해를 준다는 사실과 자신 또는 제3자에게 이익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경영자의 내심을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다. 법원은 거래 조건, 의사결정 과정, 이해관계, 위험의 크기와 경고를 무시했는지 등을 통해 고의를 판단한다.
회사의 이익을 고려한 목적이 일부 있었다고 해도 항상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 이익은 부수적인 목적에 불과하고 경영자나 제3자의 이익이 주된 목적이었다고 인정되면 배임의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영상 판단을 둘러싼 재판에서는 다음 자료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사업성·재무 분석 보고서, 이사회와 위원회 회의록, 외부 법률·회계 자문, 투자심의 자료, 담보와 채권 회수 계획, 반대 의견과 대안 검토 기록 등이다.
이들 자료는 단순히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뿐 아니라 어떤 위험을 알고 있었고,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횡령과 배임은 구분해야
기업 형사사건에서는 횡령과 배임이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지만 두 범죄의 구조는 다르다.
횡령은 보관 중인 회사 재산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행위가 주로 문제 된다. 배임은 회사 업무를 맡은 사람이 임무를 위반해 자신이나 제3자에게 이익을 주고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경우가 대상이다.
경영상 판단의 법리는 주로 투자, 대여, 보증, 자산 처분과 같은 의사결정이 배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 문제 된다.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사실이 확인된 횡령 행위까지 일반적인 경영상 판단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기록해야
기업이 법적 위험을 줄이려면 의사결정을 내린 뒤 근거를 만드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래를 결정하기 전에 목적과 위험, 대안과 이해관계를 검토하고 그 과정을 기록해야 한다.
특수관계인이나 계열사와 거래할 때는 거래 조건의 적정성을 별도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가 있는 임원은 심의와 표결에서 배제하고, 필요하면 외부 전문가의 독립적인 의견을 받아야 한다.
다만 회의록과 자문서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문서의 내용이 실제 검토 과정과 일치해야 하며, 경고나 반대 의견을 의도적으로 누락해서도 안 된다.
경영에는 실패 가능성이 존재한다. 법원도 경영상 판단과 범죄행위를 손실이라는 결과만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결국 핵심은 경영자가 당시 확보할 수 있었던 정보를 바탕으로 회사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판단했는지, 아니면 회사의 위험을 외면한 채 자신이나 특정 제3자의 이익을 우선했는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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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친절한변호사 이정일 010-4235-5346
학력 및 자격
연세대학교 법학대학 법학사 취득 / University of Washington LL.M. 과정 우수졸업
Southwestern University School of Law J.D. 취득
자격 취득
대한민국 변호사 (1983) / 미국 변호사 (1993) / 대한민국 변리사 (1998)
